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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31일
2023년 03월 15일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의 초청으로 특강을 진행합니다. 3월 15일 오후 3시에 지상 11층 1 아트H에서 "[특강] ‘여성 미술가의 재조명’ 이라는 과제: 헬렌 쉐르벡에서, 루이스 부르주아와 쿠사마 야요이를 거쳐 체칠리아 알레마니의 <꿈의 우유>에 이르는 여정"을 강의합니다.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특강] ‘여성 미술가의 재조명’ 이라는 과제: 헬렌 쉐르벡에서, 루이스 부르주아와 쿠사마 야요이를 거쳐 체칠리아 알레마니의 <꿈의 우유>에 이르는 여정 2023.03.15(수) 15:00-17:00 (지상 11층 1 아트H) 강사: 이정우(임근준), 미술 · 디자인 이론/역사 연구자 여성 현대미술가를 재조명, 재평가 하고 역사 속에서 마땅한 명예의 자리를 되찾아 줘야만 한다’는 시대적 열망은, 1960년대 후반 북미 페미니스트 혁명과 함께 태동했습니다. 2010년대 중 · 후반에 되살아난 이 흐름은 2023년 현재 드디어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 내고 있습니다. 하면, 그 전개 과정은 어땠을까요?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변화를 요구하고 있을까요? 한국의 미술관계는 이에 어찌 화답해야 마땅할까요? 신청: https://www.ehyundai.com/newCulture/CT/CT010100_V.do?stCd=220&sqCd=139&crsSqNo=35164&crsCd=203013&proCustNo=P04094382 무역센터점 위치 안내: https://www.ehyundai.com/newCulture/CT/CT050100_M.do 대표전화: 02-539-4560 ![]() 2023년 03월 13일
2023년 03월 10일
[현대백화점 문화센터 2023년 봄학기 강의]
2020년대의 현대미술: 오늘의 현대미술계는 지속 가능한가? 강사: 이정우(임근준) _ 미술·디자인 역사/이론 연구자 일시: 2023년 3월 10일-2023년 6월 2일 매주 금 19:20-22:00 강의시간: 2시간 *줌으로 진행됩니다. 주최: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 CH 1985 문의: 02-549-4560 신청: https://www.ehyundai.com/newCulture/CT/CT010100_V.do?stCd=210&sqCd=149&crsSqNo=41&crsCd=202018&proCustNo=P04094382 이 강좌는, 현대미술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오늘에서 어제로 나아가는, 시간의 반대 방향을 따라 배치된 대주제를 통해 고찰합니다. 전지구화(글로벌라이제이션)와 다문화주의의 시대가 붕해하는 도정에서 현대미술이 어떤 근본적 변화를 요구받고 있는지, 왜 지금이야 말로 가장 흥미로운 시대인지, 어떤 실험의 장이 새로이 펼쳐지고 있는지 살펴본 이후, 현대미술과 함께/따로 전개된 현대미술평론의 역사, 에이즈대위기가 현대미술의 발전에 미친 영향, 동시대미술의 의제였던 장소성, 동시대미술의 방법론이었던 전유, 컴퓨테이셔널한 사고의 산물이었던 개념미술, 동시대성의 태동을 위한 관문이 된 미니멀리즘, 마르셀 뒤샹이 미국의 네오-다다 세대에 넘겨준 상징 자본으로서의 실험성, 추상표현주의가 초현실주의를 집어삼킨 과정, 바우하우스식 교육 방법의 확산, 초기 모더니즘의 성립, 미술이 자연을 인식하고 재현하는 방식 등을 순서대로 공부합니다.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비고: 과거의 강의 프로그램이, 각각 메소드, 역사적 작업, 기념비적 전시들을 통해 현대미술사를 고찰했다면, 이번 봄 학기의 강의는 시기별 대주제를 통해 역사를 종합적으로 고찰하는 방식을 취합니다. 01. 버질 아블로와 ‘현대미술계 바깥의 현대미술’: 포스트컨템퍼러리 아트로서의 스트리트 패션에 관한 보고서 02. 현대미술평론과 큐레이팅의 작은 역사: 감식가 버나드 베런슨에서 독립 큐레이터 하랄트 제만을 거쳐 이론가/예술가 히토 슈타이얼까지 03. 에이즈 대위기와 현대미술의 변환 (르네상스 미술에 미친 흑사병의 영향을 상기하며) 04. 현대미술과 현대건축의 어떤 원격 조응: 장소성의 (실종) 문제 2.1 05. 전유의 동역학: 실재성은 어떻게 재인식됐고 어떤 파장을 낳았는가? 06. 사이버네틱한 사고의 확산과 매체의 재창안: 기술 환경의 변환과 그에 조응하는 예술 창작 과정의 대두 07. 형식주의의 색/형 실험에서 ‘정체성을 따르는 추상’으로: 샘 길리엄과 주디 시카고의 경우 08. 마르셀 뒤샹이 세상에 남긴 바 혹은 마르셀 뒤샹으로부터 주어진 것에 관해 09. 페기 구겐하임과 추상표현주의의 승리: 금세기미술갤러리(1942-1947)에서 <16인의 미국인(16 Americans)>전(1959)까지 10. 바우하우스의 총체예술적 페다고지(교육학): 라슬로 모호이너지와 요제프 알버스 11. 폴 세잔과 모더니즘의 형성: 현대미술의 성립 조건에 대한 탐구 12. 미술이 자연 환경을 다루는 방법 2.0: ‘환경을 생각하는 미술’의 인식론과 그 전환의 계보 + 라우션버그의 로키(ROCI) 프로젝트 ![]() ![]() ![]() ![]() ![]() ![]() ![]() ![]() ![]() ![]() 2023년 03월 08일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의 초청으로 특강을 진행합니다. 3월 8일 오후 3시에 지상 11층 1 아트H에서 "위대한 경쟁: 마티스와 피카소의 상호 호응 구조"를 강의합니다.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특강] 위대한 경쟁: 마티스와 피카소의 상호 호응 구조 일시: 2023.03.08(수) 15:00-17:00 (지상 11층 1 아트H) 강사: 이정우(임근준), 미술 · 디자인 이론/역사 연구자 현대미술 운동의 형성 과정에서부터 말년에 이르기까지 치열한 경쟁을 통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은 두 예술가의 인생을, 용트림하는 역사의 큰 흐름 속에서 고찰하고 해석합니다. 일단, 인생을 건 대결에서 최종적으로 승리를 거둔 이는 누구일까요? 마티스일까요? 피카소일까요? 신청: https://www.ehyundai.com/newCulture/CT/CT010100_V.do?stCd=220&sqCd=139&crsSqNo=35163&crsCd=203013&proCustNo=P04094382 무역센터점 위치 안내: https://www.ehyundai.com/newCulture/CT/CT050100_M.do 대표전화: 02-539-4560 ![]() 2023년 03월 03일
2023년의 서울에서 만나는 로버트 맨골드: 시적 미니멀리즘이라는 역사적 갈림길의 용도
글 _ 이정우(임근준), 미술·디자인 역사/이론 연구자 “나는 관객에게 문제를 설정해 제시하는걸 좋아한다. 예를 들어, 보통 그림의 중심에 있는 것이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는데, 하면 중심이 빈 원형은 시각적으로 어떻게 다뤄지는가? 마치 메인 코스가 없음에도, 보통 메인 코스에 놓이는 모든 것들을 다뤄야 하는 경우와 같다.” - 로버트 맨골드(Robert Mangold, 1937-) ![]() 1972 work on paper 33 x 27.9 cm No. 48761 ![]() 1989 acrylic and black pencil on canvas 175.3 x 322.6 cm No. 21651 ![]() 1990 acrylic and back pencil on canvas 243.8 × 326.4 cm No. 76822 ![]() 1993 graphite on paper 105.4 × 148.6 cm No. 24458 ![]() 1994 graphite and black pencil on paper 55.9 x 76.8 cm No. 48754 ![]() 1996 acrylic and black pencil on canvas 228.6 x 503.6 cm No. 28719 2023년 1월 20일 서울의 페이스갤러리에서 ≪로버트 맨골드: 회화와 종이 작업 1989-2022(Robert Mangold: Paintings and Works on Paper 1989–2022)≫전(20230120-0311)이 개막했다. 1994년 9월 국제화랑에서 로버트 맨골드 개인전이 열린 이후 처음이니, 29년만의 일이다. 1990년대 초중반 한국의 현대미술계에서 도널드 저드나 로버트 맨골드의 개인전은, 장소 특정성의 시대의 바탕이 된 매체 특정성의 논리를 재확인하는 기회로 작용했다. 하면, 2023년의 로버트 맨골드 작품전은,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잡은 한국(혹은 서울)의 현대미술계에서, 어떤 의의를 지니는 것일까? 1960년대 미국에서 성립된 형식주의 미술의 여파는, 왜 오늘의 미술가들과 미래 세대에게 여전히 인식론적 극복의 대상이 될까? 페이스갤러리의 ≪로버트 맨골드≫전은, 1989-1996년 시기의 작업과, 2013-2022년 시기의 작업으로 구성돼 있다. 그러나, 역시 ‘회화의 존재 조건을 탐구하는 회화’를 탐구해온 약 60년의 흐름을 읽으려면, 1960년대의 작업을 이해하는 과정이 필수다. 최근의 작업에서 특유의 드로잉, 즉 연필선들이 사라졌기에, 작가는 과거와 달리 드로잉과 회화 작업을 한 자리에 함께 거는 모습을 취했다. 이러한 태도의 변화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변형된 지지체로 구현된 색면추상의 근작만을 보자면, 엘스워스 켈리(Ellsworth Kelly, 1923-2015)의 빈자리를 잠식하려 드는 것처럼 뵈기도 한다. ![]() 2013 acrylic and black pencil on canvas 153 x 153 cm No. 57556 ![]() 2015 acrylic and black pencil on canvas 127 × 251.5 cm No. 63572 ![]() 2017 acrylic and black pencil on canvas 152.4 × 261.6 cm No. 69960 ![]() ![]() 2019 pastel and black pencil on paper 57.8 × 76.2 cm each No. 79649 전성기의 맨골드는 (청년기의 엘스워스 켈리와 마찬가지로) 직해주의적 태도로 일상의 사물에서 색채를 취하는 모습을 뵀다. 미묘한 채색 효과를 구현하기 위해, 에어브러시로 유성 안료로 그라데이션을 만들고, 그 위에 롤러로 색면을 입힌 뒤, 붓으로 아크릴 물감을 칠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에 그는 임의적 색채를 취해왔고, 점차 과거의 엄정성은 희석되고 있다. 캔버스 제작부터 모두 손수 작업하기를 고집해왔기에, 작업의 규모가 점차 작아지고 있기도 하다. 말년성의 발현은, 작업 세계에 어떤 변화를 야기할까. 당신의 예측은 어떠한가. 어떤 미래가 뵈는가. 근미래에, 형식주의를 실험한 세대가 모두 세상을 뜨게 되면, 현대미술계는 어떤 변화를 맞게 되겠는가. ![]() 2022 acrylic on canvas 120 × 131.4 cm No. 80917 청년 로버트 맨골드는 1962년 모마에서 수위로 일하며 현대미술계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이는 개념미술가 솔 르윗이나 루시 리파드의 경우과 상당히 유사했다. (루시 리파드는 1958년의 모마 화재 사건 직후 도서와 문서 자료의 정리를 맡았던 적이 있고, 솔 르윗도 모마의 경비원이나 도서관 지킴이로 일하며 미술계의 일원이 됐다.) 실제로 셋은 가까운 동료로서, 작업 세계를 통해 추구하는 가치에 있어서도 공통점을 뵀다. 맨골드는 미니멀리즘 회화를 추구하면서도, 개념미술가로서의 관점과 태도를 갖고 ‘과정’을 조형의 대상으로 사고했다. 그런데, 완전한 형식주의를 지향하면서도, 그 안에서 재현을 가능케하는 회화의 기본 언어—면의 분할과 선의 질주—를 다루고자 했다(1980년대에 포스트모더니즘이 본격 대두하고, 동시대미술의 시대가 활짝 열린 뒤로 그러한 면모가 강화됐다). 파이든출판사의 소유주 리처드 슐래그먼(Richard Schlagman)의 제안으로 1996년에 모노그래프 출간을 위한 조사 연구 작업을 시작해 2000년에 비로소 작업 세계를 총괄하는 도록을 출간했는데, 그 이후로는, 형식주의의 골격을 유지한 채로, 추상의 언어를 장식적으로 활용하는, 여유 있는 모습을 뵈기도 했다. (‘감긴/웅크린 형상 회화[Curled Figure Paintings]’ 연작은, 다소간 자기 풍자의 성격을 띠었다.) 맨골드가 제작한 캔버스들을 보면, 어린이 공작 교실을 위한 안내서가 제작 과정을 도해하듯이, ‘지지체가 그림으로서 그려진 요소들과 결합하는 방식’을 스스로 드러낸다. 친절하게 느껴질 정도로 설명적이지는 않지만, 스스로 구조를 드러내 이야기한다. 어쩌면 그러한 ‘그림의 자가 진술’이 그려진 색면이나 선 같은 개별 요소보다도 중요했다. 기하하적 구성 이상의 의미로 재구조화된 메이소나이트 지지체나 셰이프드캔버스(shaped canvas: 그림에 맞춰 최적화된 모습으로 물화되는)를 통해, 맨골드는 스며드는 색채와 그 위와 사이에서 그림의 기본 언어를 메타-사유하고자 했다. (비고: 맨골드가 캔버스를 사용하기 시작한 해는 1968년이었다.) 1966년 구겐하임미술관의 기획전 ≪전체에 작용하는 회화(Systemic Painting)≫(큐레이터: 로렌스 앨로웨이[Lawrence Alloway]), 1972년 ≪제5회 카셀도쿠멘타(documenta 5)≫(총감독: 하랄트 제만[Harald Szeemann])에 주요 작가로 초청되는 등, 그는 매체-특정성의 회화와 조각에서 장소-특정성의 미술로 이어지는 미술사적 대전환의 과정에서 늘 중심에 서 있었다. 하지만, 다소 기이하게도 맨골드는 현대미술의 전개 과정에서 다소간 주변부화된 인물이기도 하다. 미니멀리즘 회화의 특정 논점에서 핵심이 되는 인물로 다뤄졌지만, 아무래도 바넷 뉴먼식 색면추상에서 본격적인 미니멀리즘 조각으로 중심축이 이동해가는 과정 속에서, 물감으로 구현하는 색채를 담아내는 캔버스는 덜 중요한 방법으로, 지나치게 구식 재현 미술의 전통과 가까운 것으로 간주됐다. 본격적으로 ‘물성에 의해 귀결되는 형태’를 실험하고 탐구하는 작가들(칼 안드레, 리처드 세라, 에바 헤세 등)이 나타날 때, 맨골드와 같은 시적 추상의 미니멀리즘 캔버스는 다소 모순적이고 또 다소 안이한 것으로 비춰지기도 했다. 맨골드와 동세대였던 이들이 전통과의 단절을 표방했다면, 맨골드는 단절이 아닌 재연결, 연결의 재창조를 바랐던 것처럼 뵈기도 한다. 예컨대, 맨골드의 캔버스들은, 마티스의 반즈 벽화들에 대한 화답이나, 혹은 르네상스 시기의 벽화에 대한 현대적 재해석처럼 뵈기도 하는 것. 솔 르윗이 홍수 피해를 입은 피렌체에서 떨어져나간 프레스코 회벽 아래의 원근법 안내선들을 보고 ‘월 드로잉(wall drawing)’ 연작을 위한 영감을 얻었듯, 맨골드도 회화적 환영을 창출해온 체계의 진실을 드러내는 ‘메타-회화’를 그려내고자 했다. (맨골드의 작품들을 ‘조각적 회화‘ 혹은 ’성찰을 위한 사물이 되는 그림‘으로 해석해볼 수도 있지만, 정작 화가는 자신의 그림을 하나의 시점에서 고찰하는 평면적 회화의 게임으로 한정했다. 즉, 환경 속에 놓이는 사물임을 주장하는 특정성의 오브제는 아니라는 것.) 한데, 그림의 본질, 그리기의 본질을 탐구한다는 현상학적 열망은, 현대미술가들의 플라톤 콤플렉스에 기인한다. 플라톤의 본질주의가 자연의 고찰로부터 나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자연의 추상에서 벗어나 기계 문명의 추상으로 나아간 역사는 다소 배반이나 반칙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과학 기술 문명을 다시 의사 자연으로 사고해온 서양인들의 추동은, 그러한 모순의 극복을 위한 장치가 되는 셈이고. 자연으로부터 인상을 받아야 하거나, 도시로부터 인상을 받아야 했던 한계에서 벗어나는 길엔 몇 가지가 있을까. 잭슨 폴락처럼 ‘내가 자연이다’라고 선포할 수도 있지만, 그를 더 이성적으로 재해석해, 뇌의 시지각 작용의 세계로, 뇌내 시각장으로 논점을 이동시키는 방법이 가장 효율적이다. 흥미롭게도, 뇌내 시각장의 문제를 다루는 추상미술가 가운데 다수는 한국전 세대였다. 솔 르윗 돈 저드 댄 플레이빈 제임스 터렐 등을 보면 공통점이 확연하지만, 아직 한국전 시기의 경험과 추상미술의 논점 변환의 문제는 심도 깊게 논의된 적이 없다. 맨골드의 캔버스들을, 그림의 추창조, 즉 뇌내 시뮬레이션에 대한 게임으로서 독해하면, 여러 흥미로운 이슈들이 파생된다. 서양의 현대미술운동사를 보면, 색의 미술가들이 기존의 질서를 파괴하면, 다시 형의 미술가들이 나타나 새로운 질서를 형성하는, 모종의 패턴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인상파의 색과 형태를 붕해시키는 붓질에 만족할 수 없었던 세잔이, 그림을 그리는 자의 진실을 사고하며 화면의 구조화를 탐구했던 일, 그리고 말년에 이르러 현대미술의 참된 창시자로 추앙받게 된 까닭을 다시 한 번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추상표현주의가 색으로 다시 형태의 붕해를 야기하면, 다음 세대는 창조적 붕해의 상황 속에서 형태의 논리를 재정립해야만 했다. (반면, 한국의 단색화는 수행적 그리기를 통해 그림의 본질을 탐구했지만, 대개 점과 선의 문제로 환원했을 뿐 형태의 논리를 외면했다.) 맨골드는 색과 형의 조화를 추구했다. 그것은 그의 장점이기도 했지만, 과도적 모호함과 동어반복을 야기하기도 했다. 이는 모종의 형식주의 메소드를 확립한 작가들의 약점이자 숙명이었다. 사전에 수립된 가설과 전제에 따라 비창조적 방식으로 창작을 전개하는 일은, 당시엔 예술(특히 앞세대의 초현실주의와 추상표현주의)에 대한 과도한 환상이나 예술가와 예술의 자율성 사이에 존재하는 불균형을 극복하는 진보적 실천이었다. (한국에선 단색화가 일종의 득도-예술이 되고 말았지만.) 맨골드 세대의 또 다른 약점은, 아이디어 기반의 작업이라 구현 과정이 다소 재미 없는 단순 노동이 된다는 점이(었)다. 유기적 사고를 반영하는 개념주의적 회화의 영역은, 라우션버그의 조수 출신 브라이스 마든(Brice Marden, 1938-)이 개척했다. 맨골드의 친구이기도 한 마든도 나뭇가지를 이용해 (색면을 최적화의 감각으로 분할하는) 유기적 선을 긋기 시작한 것은 1985-86년 이후의 일. (맨골드를 보다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재해석한 성격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마든도 메소드의 재확립 이후 반복 변주의 시공에 머물렀다. (따라서 여전히 유기적 사고를 반영하는 개념주의적 중층 회화의 영역은, 즉 회화적 회화로 개념미술을 전개하는 일은, 미개척/미지의 프론티어로 남아 있다.) 한국에서 레디메이드 캔버스를 사용하는, 특히 여타 매체를 고정시키는 용도로만 사용하는 청년 작가들을 종종 보게 된다. 이미지의 구성만 생각하고, 지지체의 구조는 무시하는 일로, 현대미술의 역사적 성취들을 무시하고 과감하게 몽매의 과거로 퇴행하는 셈이다. 무라카미 다카시도 그 점을 깨닫지 못하고 창작한 무명 시절의 작품들을 (시카고당대미술관에서 마이클 달링의 강권으로) 전시해야 했을 때, 상당히 당황스럽고 창피하다고 말했다. 창피를 깨달아야 진보와 도약이 가능하다. 맨골드의 회화를 도식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레디메이드 환경에서 발견한 일종의) 기본 색상 x (지지체로 구현하는) 기본 형태 x 색면을 분할하는 (연필로 그어진) 기본 선형 = 맨골드 1차적으로 보게 되는 핵심: 분리되고 연결된 변형 캔버스들을 뛰어넘거나 혹은 넘지 못하는 선들, 캔버스의 표면을 차지한 색채들의 연원(참조점), 캔버스가 추상회화의 구현을 위해 구조화된 방식. 그 안에서 다시 재현 전통의 기본이 되는 선묘를 재사고해야 했던 시대적 사명. 2차로 보게 되는 핵심: 동년배 미술가들과의 교류와 경쟁 속에서 개념주의를 통해 미니멀리즘에 다시금 어느 정도 환영성을 허용 혹은 도입했던 선택의 댓가. 맨골드 세대의 미국식 형식주의에 직간접적으로 화답한 한국인은 누가 있을까? 김수자와 홍승혜가 있다. 둘 다 초기에 형식주의를 몸체 삼아 새로운 아이디어와 주체성을 발현시키는 과정을 밟았다. 김수자는, 미리엄 샤피로의 경우를 참조해 도시화 과정에서 서서히 퇴출되는 동시대 버내큘러 요소로 미니멀리즘을 오염시키고, 그로부터 주변부화된 주체들의 시간과 장소를 의제화해내는 길을 찾아냈다. 반면 홍승혜는, 컷아웃 시기의 마티스 같은 시각과 관점으로 포스트모더니즘에 잠식된 미니멀리즘을 갖고 놀았고, 이후 그러한 유희의 메타-형식주의 게임을 본격화하기 위해 픽셀의 디세뇨를 창안하는 단계로 나아갔다. (마사 그래이험 메소드 위에 토속 요소를 들이부어 한국식 아상블라주의 동시대 예술 혹은 한국식 탄츠테이터를 창출해냈던 청년기의 현대무용가 안은미도, 유사한 성공 사례다.) 이들 여성 현대미술가들은, 세계인이자 주변부화된 한국인 여성으로서, 북미 남성 형식주의를 포용하고 숙주 삼아 ‘전지구화 시대의 미디어 재창안’을 실천함으로써 ‘정체성을 따르는 추상’ 이상의 동시대적 영역을 개척했다. 하면, 한국의 동년배 남성미술가들은 그런 성과를 내지 못 했을까? 아니다, 한 명 존재한다. 바로 최정화. 최정화는 신구상회화를 때려치운 뒤, 저개발 사회의 플라스틱 바구니 등을 미니멀리즘의 문법으로 쌓아올리며 오염의 전략을 구사했다. 그를 통해 동시대예술의 시공을 확보하고 또 그를 공유했다는 면에서, 청년기의 그는 의제 설정자 이상의 역할을 했다. (펠릭스 곤살레스-토레스와 비교해봐도 최정화의 형식주의의 지역화/토속화 전략은 퍽 흥미롭다. 하위-주체가 동시대성 차원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시공을 창출-확보하는 방법이었기 때문.) 하지만, 최정화 외의 남성 사례는 찾기 어렵다. 펠릭스 곤살레스-토레스에게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일컬어지는 오인환의 작업들을 봐도, 형식주의를 숙주로 삼은 작업을 찾기는 쉽지 않다. 형식주의는 이제 역사의 여러 장면으로 연결되는, 특히 동시대성의 시공으로 연결되는 공공재-포털이 됐기 때문에, 재정의와 재창안을 통해 우리는 역사의 여러 차원을 새롭게 이어붙이는 브리콜라주의 실험을 전개할 수 있다. 활용을 두려워하거나 주저해서는 안된다. 한데, 활용코자 한다면, 먼저 알아야 한다. 그 현상학적 실존의 미술/지술(知術)을 체득해야 한다. /// 추신) 무라카미 다카시 미스터 커즈 등은 셰이프드 캔버스 실험을 지속하고 있다. 1980년대 네오팝에서 키스 해링 정도가 셰이프드 캔버스를 실험했으니, 이는 또 오묘한 계승이다. 반면 한국의 네오팝 작가들 가운데 형식주의의 논리를 포용하는 경우는 보기 어렵다. 추신2) 셰이프드 캔버스는 사실 스트럭처드 캔버스, 재창안된 캔버스로 불렸어야 했다. *아트인컬처 2023년 2월호 기고문의 미축약 미교열 초고. 귀한 지면을 주신 편집부(김해리 기자님)에 감사드립니다. 자료 제공 등 취재에 도움을 주신 페이스갤러리(담당 김경미 기획자님)에도 고마움을 표합니다. ![]() ![]() 2023년 02월 25일
인류의 내일을 비춰보는, 구리판 위의 세계상-게임
글 _ 이정우, 미술·디자인 이론/역사 연구자 타데우스로팍서울에서 열린 로버트 라우센버그(Robert Rauschenberg, 1925-2008)의 개인전 ≪코퍼헤드(Copperheads) 1985/1989≫(20221103-1223)는, 작업만 자세히 살펴보면 되는 그런 기획은 아니었다. 작고 작가를 재조명하는, 새로운 길로 접어드는 이정표로서 독해해야 마땅한 자리였다. 라우센버그재단이 내놓은 17점의 출품작 가운데, ≪코퍼헤드바이트(Copperhead-Bites)≫ 연작에 속하는 여덟 점과 ≪코퍼헤드(Copperheads)≫ 연작에 속하는 석 점 가운데 한 점(두 점은 비매품)이, 관련 사진 작업들과 함께 모두 구매 가능한 매물이었다. 그러므로 라우센버그재단이, 미술관 전시와 상업갤러리 전시의 복합 진행을 통해, 작가를 향한 미술계의 관심과 열정을 되살리고자 과감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 뵀다. (비고: ≪코퍼헤드바이트≫ 연작에 속하는 작업들이 각각 170만 달러였고, 싱글 에디션인 사진 프린트는 한 점당 4만5천 달러였다.) ![]() ![]() ![]() ![]() ![]() 코퍼헤드는 황갈색 독사를 뜻하므로, 코퍼헤드바이트는 독사에 물린 상처를 뜻하지만, 1982년부터 대유행했던 스네이크바이트(Snake Byte)라는 애플 컴퓨터 게임을 연상케 하기도 하니, 작가의 실크스크린과 솔벤트-전사 작업을 변주하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신작을 위한 다중적 유비로서 이해하는 것이 좋겠다. ≪코퍼헤드바이트≫ 연작은 작가의 세계 투어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였던 ‘로키-칠레’ 프로젝트를 대표하지만, 사실 걸작은 아니다. 칠레 경제에서 중요한 한 축을 차지하고 있던 구리에 호기심을 느낀 작가는, 칠레 북부 안토파가스타(Antofagasta)에 인접한 구리 광산과 주조 공장을 방문해 재료에 대한 정보와 다양한 산화 기법을 습득했다. 구리판 지지체를 바탕으로 특유의 네오-다다적 구성으로 이러저러한 사진 이미지를 실크스크린으로 중첩-제시하고, 그에 다양한 회화적 제스처를 추가한 결과가 1985년의 ≪코퍼헤드바이트≫ 연작이다. (작가는 1988-1992년 다시 구리판 지지체로 ≪보레알리스(Borealis: 오로라를 지칭하는 이름)≫ 연작을 제작하고, 1989년 역시 구리판 지지체로 ≪코퍼헤드≫ 연작을 재시도했다.) ![]() 사진: 작가 미상 © The Robert Rauschenberg Foundation 거울처럼 반사하는 재질의 지지체를 활용한 창작은, 작가의 작업 세계에서 새출발을 뜻하는 ≪백색 회화(White Painting)≫ 연작(1951)에 연관되는 것이기도 하고, 마르셀 뒤샹의 ≪큰 유리≫에 대응하는 유리판 작업들과 연결망을 형성하기도 한다. 1961년 존 케이지는 ≪백색 회화≫ 연작을,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 반응하는 수용적 표면으로 해석하며, “빛과 그림자와 미립자들을 위한 공항(airports for lights, shadows and particles)”이라고 묘사했다. 작가는 백색의 화면에 주변 환경과 관객의 존재가 반사되는 현상을 중시했던 터였다. (비고: 1952년작 가운데 ‘거울’을 부제로 단 작업이 따로 존재한다.) 고로, ≪코퍼헤드바이트≫ 연작에서도 작가는 관객이 그림을 통해 주변 환경과 변화하는 세계와 자신의 “현존재(Dasein)”를 재인식할 수 있기를 바랐다고 볼 수 있다. 아무튼, 작가는 ≪코퍼헤드바이트≫ 연작 이후 구리 외로, 황동, 알루미늄, 청동 등 다양한 금속 지지체 작업을 전개했다. 하지만, 역시 참된 출발점은, 1964년 일본 방문 때 시도했던 일본식 금박 병풍 작업 ≪황금 표준(Gold Standard)≫(1964)이 되겠다. ![]() Copperhead-Bite VI / ROCI CHILE 코퍼헤드 바이트 VI / 로키 칠레, 1985 구리에 실크스크린 잉크, 아크릴, 변색 약품 245.6 x 123.8 cm (96 3/4 x 48 3/4 in) ![]() Copperhead-Bite IV / ROCI CHILE 코퍼헤드 바이트 IV / 로키 칠레, 1985 구리에 실크스크린 잉크, 아크릴, 변색 약품 245.9 x 123.8 cm (96 3/4 x 48 3/4 in) ![]() Copperhead-Bite VIII / ROCI CHILE 코퍼헤드 바이트 VIII / 로키 칠레, 1985 구리에 실크스크린 잉크, 아크릴, 변색 약품 245.8 x 123.8 cm (96 3/4 x 48 3/4 in ![]() Copperhead-Bite VII / ROCI CHILE 코퍼헤드 바이트 VII / 로키 칠레, 1985 구리에 실크스크린 잉크, 변색 약품 245.7 x 123.8 cm (96 3/4 x 48 3/4 in) ![]() Hawk-Eyed (Copperhead) 매서운 눈 (코퍼헤드), 1989 구리에 실크스크린 잉크, 애나멜, 변색 약품, 청동 액자 123.8 x 245.7 cm (48 3/4 x 96 3/4 in) ≪코퍼헤드 1985/1989≫전은 서울에서 첫선을 뵌 기획이라는 점, 즉 기존의 전시를 수입한 결과가 아니라는 점에서도 특기할만했는데, 재단에서는 시니어 큐레이터인 줄리아 블라우트(Julia Blaut)와 작품 관리 담당자인 토머스 로치(Thomas Roach)를 서울로 파견했다. (이는 ‘해외 유명 작가의 기존 전시를 소략하게 재구성해 서울에서 선봬도 괜찮던 시대는 이제 끝났다’는 메시지가 되기도 한다.) ≪코퍼헤드≫ 연작에 속하는 ≪코퍼헤드바이트≫ 연작은 딱 12점인데, 그 가운데 8점이 1985년 제작되고 바로 전시된 이후 처음으로 공개되는 자리였으니, 갤러리와 재단 측이 서울에서의 전시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셈이다. 작고 작가의 유업 관리는 21세기 현대미술계의 최대 이슈 가운데 하나다. 로버트 라우센버그나 앤디 워홀 같은 역사적 존재라고 해도 예외가 아니다. 시대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시점으로 작업 세계를 재조명하고, 또 청소년과 청년 세대와 작가와의 연결고리를 창출-활성화하지 않으면, 허명만 남고 소중한 실체는 망각되는 수도 있다. 세월이 흘러도 현대미술은 결코 요해가 쉬운 대상이 아니다보니, 유업 관리자의 능력에 사실상 거의 모든 것이 달렸다. 새로운 관점의 전시가 꾸준히 이어지고, 적당량의 주요 작업이 매물로 나와 신세대 소장자들의 리그가 형성되고, 또 종종 경매에서 신기록이 나와야 하므로, 막후에서 여러 일들이 복합적으로 전개돼야만 한다. 로버트 라우센버그의 경우, 2008년 작가가 세상을 뜬 이후 유산과 유업을 놓고 법정 다툼이 이어지면서, 사업이 원활히 이어지지 못했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25년 이상의 기간동안 작가의 조수이자 또 배우자였던 대릴 파토프(Darryl Pottorf)와 작가의 아들 크리스토퍼 라우센버그(Christopher Rauschenberg) 사이의 싸움이었다. 대릴 파토프가 작가의 유언 집행자였지만, 라우센버그재단은 아들이 이끌었다. 아들은 대릴 파토프와 그의 편에 선 이사진을 재단에서 밀어내고자 했고, 2011년 법적 다툼이 시작됐다. 싸움은 2017년 마무리됐고, 모마의 부관장이었던 캐시 할브라이시(Kathy Halbreich)가 재단의 디렉터로 부임하면서 유업 관리는 정상화 궤도에 올랐다. 따라서, 2017년 모마에서 개막했던 대형 회고전 ≪친구들 사이의 로버트 라우센버그(Robert Rauschenberg: Among Friends)≫는 다소 미흡한 모습일 수밖에 없었고, 다소 쓸쓸한 풍경으로 남고 말았다. 하지만, 곧 라우센버그재단은 여러 사업을 공격적으로 전개했다. 캡티바섬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다시 활성화되고, 아카이브 정리 작업에 속도가 붙고, 덜 조명된 작업들이 재공개되고, 카탈로그레조네 사업의 발표가 이어졌다. 로버트 라우센버그는 1964년 제32회 베니스비엔날레에서 미국인 최초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며 미국의 피카소로 추앙받았지만, 일리아나 소나벤드가 로비로 받아낸 상은 작가의 창조력 유지에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작가는 1966년 이름값을 활용해 ‘예술과 기술의 실험(E.A.T.: Experiments in Art and Technology)’을 조직하고 예술계에 헌신했으며, 본인도 E.A.T의 《아홉 번의 밤: 연극과 공학》을 통해 ≪오픈 스코어(Open Score)≫를 발표하며 ‘뒤샹의 레거시를 잇는 네오-다다적 예술계의 리더’로서 승승장구했지만, 1977년 모마에서 회고전을 치른 이후로는 슬럼프에 빠지고 만다. 뒤샹이 프랑스가 아닌 미국에서 미래를 발견했듯이(그리고 아예 국적까지 바꿨듯이), 라우센버그는 미국 밖에서 가능성을 찾고자 했다. 1982년 6-7월 처음 중국을 여행하고 중국의 공예가들과 협업한 결과로 12월 모마에서 ≪중국의 라우센버그(Rauschenberg in China)≫라는 전시를 연 것이 그러한 노력의 본격적 출발점이었다. ![]() 유엔에서 ‘상호 문화 이해를 기반으로 하는 세계 평화 운동’을 설파하며 로키(ROCI) 즉, 라우센버그해외문화상호교류(Rauschenberg Overseas Culture Interchange) 프로젝트를 발표한 해는 1984년이었지만, 실제론 이미 1982년에 사업이 전개되고 있었던 것. 이후 로키는 1991년까지 7년간, 멕시코, 칠레, 베네주엘라, 중국, 티벳, 일본, 쿠바, 소비에트, 독일과 말레이시아 등 10개국(미국을 포함하면 11개국)을 도는 투어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방문 국가의 문화에 적극적으로 조응하며, 200점 이상의 회화, 사진, 아상블라주, 다매체 작업을 제작했으나, 세간의 평가는 그리 긍정적이지 않았다. (로키라는 이름은, 사실 그의 애완용 육지 거북의 이름에서 따왔다. 거북이 로키는 1966년 사진에서부터 확인되고, 로키 프로젝트에서도 상징으로 활용되며 여러 사진과 영상에 등장했지만, 이후의 생사는 알려진 바 없다. 마이클 잭슨의 페르소나였던 반려 침팬지 버블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로버트 라우센버그는 친구 머스커닝험을 도와 세계 투어에 나섰던 1964년의 경험이 로키 프로젝트의 예행 연습이 됐다고 말한 바 있다. 당시에 라우센버그의 현대무용 협업 등은 러시아발레단과 투어를 돌았던 피카소의 뒤를 잇는 것으로 비춰졌지만, 오늘의 시점에선 좀 달리 뵈기도 한다. 실제론 뒤샹처럼 타국에서의 새로운 가능성에 투자하고 있었다는 말씀이다. 뒤샹은 미국에서 자신을 추종하는 로버트 라우센버그와 존 케이지와 머스 커닝험과 재스퍼 존스 등을 만나, 미술운동사의 향방을 뒤바꾸는 특별한 인물이 됐다. 하면 라우센버그는 누구를 만났을까? 국적을 바꿀 마음이 들 정도로 자신을 추앙하는 청년 세력을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남미, 아시아, 소비에트에서 대안적 가능성을 찾고자 했던 것만큼은 분명하다. 라우센버그재단도 그리 생각하는 모양으로, 로키 프로젝트를 비롯한 세계 각지의 협업 결과를 재조명하고자 애쓰고 있다. 2019년 타데우스로팍잘츠부르크에서 개최했던 ≪보레알리스 1988-82≫전이 ≪코퍼헤드 1985/1989≫전으로 이어지고 있다면, 2022년 잘츠부르크빌라카스(Salzburg Villa Kas)에서 타데우스로팍갤러리의 기획으로 개막했던 ≪일본 점토 작업(Japanese Clayworks)≫전은 1982-83/1985년 작가가 일본의 오츠카오미도업주식회사(Otsuka Ohmi Ceramics Company: 서양 명화를 세라믹으로 구현-전시하는 것으로 이름난)와 협업한 결과를 재조명하는 자리였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재평가 시도의 출발점엔, 2016년 중국 베이징의 UCCA에서 열렸던 대형 전시 ≪중국의 라우센버그(Rauschenberg in China)≫전이 놓여있다. 장장 길이 305미터에 이르는 초거대 작업 ≪1/4 마일 혹은 2 펄롱(The 1/4 Mile or 2 Furlong Piece)≫(1981–98)을 포함해 1982년 중국을 처음 방문했을 당시의 기록을 바탕으로 한 ≪중국식 여름집을 위한 습작(Study for Chinese Summerhall)≫(1982, 1983, 1984) 등 로키-중국의 활동을 망라하는 자리였다. ![]() 라우센버그가 로키 활동을 통해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나라는 중국이다. (일본에는 1964년 방문 때 이미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1985년 11월 베이징의 중국미술관에서 로키-중국의 전시를 개막하기 전부터, 이미 라우센버그는 중국의 자생적 동시대미술운동에 영감의 원천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중국의 미술평론가 후앙주안(黃專, 1958-)은 라우센버그가 중국미술계에 던진 충격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제까지 관방미술 주도하의 전시만 보아왔던 중국화가들에게 라우센버그의 작품은 통쾌함과 즐거움을 선사했다. 작가들은 다다이즘에 심취했으나 아직 해체주의의 힘에 대해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쓰레기도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중국 작가들을 흥분시켰다. 나는 당시 허버트 리드(Herbert Read, 1893-1968)의 책을 통해 팝 아트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뒤샹의 다다이즘을 잇는 미국의 네오-다다가 초현실주의를 미국식으로 번안했던 추상표현주의를 극복하고 새로운 확산의 장을 창출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점을 간파한 중국인 미술가는 나타나지 못했지만, 아무튼 라우센버그를 팝아티스트 혹은 그 전조로 이해한 중국인들이 리셴팅을 필두로 하는 중국식팝아트운동을 창출했다면, 라우센버그를 다다 혹은 네오-다다로 이해한 이들은 아이웨이웨이에서 쉬빙으로 이어지는 소수파의 흐름을 형성했다. 그렇다면, 한국의 청년 현대미술가들은, 서울에서 열린 로버트 라우센버그의 개인전 ≪코퍼헤드 1985/1989≫에서 무엇을 봤을까? 거장의 도전과 실패, 슬럼프 말고, 더 큰 그림을 봤을까? 보통은 로키 프로젝트를 ‘아름다운 실패’로 규정한다. 하지만 나는 라우센버그가 던져놓은 진짜 승부수―유럽에서 미국으로 이동한 현대미술의 중심축이 다시 지구상의 어디론가 이동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가 아직 결판이 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 추신) 로키-한국이 전개됐으면 어땠을까? 국립현대미술관엔 로키 담당자들이 조사를 위해 방한했던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한다. 하지만, 로키-한국은 실현되지 못했다. 사실 백남준은 1984년 1월 1일의 인공위성쇼 ≪굿모닝 미스터오웰≫에 밥 라우센버그를 초대하려고 무진장 공을 들였다. 사전 홍보 과정에서 라우센버그도 나올 거라고 큰소리를 치기도 했다. 하지만, 백남준을 좋게 보지 않았던 라우센버그는, 결국 출연하지 않았다. 만약 그가 백남준과 협업했더라면, 엄청난 파장이 일었을 텐데. 퍽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추신2) 재단에 문의해보니, 거북이 로키는, 이름과 달리 암컷이었고, 2008년 8월에 죽었다고 한다. 연명 치료를 거부한 주인이 당해 5월 12일 영면에 들었으니, 몇 달만에 저승길을 따라간 셈이었다. 추신3) 재단 운영을 새로운 단계로 이끌었던 캐시 할브라이시는, 2023년 1월 25일, 재단을 떠난다고 발표했다. 화끈하고 깔끔한 이별이 됐다. 이하는 공문의 자동 번역(DeepL)이다: “향후 계획 2023년 1월 25일 친애하는 친구 여러분, 이 소식이 보도되기 전에, 저는 올해 5월 로버트 라우첸버그 재단의 상임이사직에서 물러날 예정이라는 사실을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저는 재단이 함께 이룬 성과에 대해 깊은 만족감을 느끼며, 새로운 세대의 기관 리더들이 재단을 더욱 발전시킬 준비가 되어 있다는 깊은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팬데믹의 위태로움을 헤쳐나가고, 용기 있고 심지어는 반대되는 많은 예술 및 자선 프로그램과 두 개의 주요 혁신 프로젝트를 감독하면서 재단을 이렇게 활기차고 유리한 재정 상태로 남겨두게 된 것은 특히 의미 있는 일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밥의 업적을 더 잘 이해하고 그의 유산을 그 어느 때보다 안전하게 지킬 수 있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2017년 9월, 저는 엄청난 가능성과 권한을 얻은 기분으로 재단에 도착했습니다. 제가 맡은 첫 번째 임무는 재단의 사명을 되새기는 것이었는데, 이는 밥이 일상적인 예술 활동과 더 진보적이고 자비로운 세상을 향한 대담한 옹호 모두에서 보여준 자유를 포용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이러한 정신은 연구 및 학술 파트너십, 컬렉션 관리, 전 세계 박물관 및 갤러리와의 협업, 자선 활동과 예술가 지원에 대한 능숙하고 협력적인 접근 방식에 이르기까지 밥의 유산을 강화하기 위해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저는 부임 직후 익명의 예술가 위원회를 만들어 기부를 안내하고, 생각을 넓히고, 접근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현재 이 단체의 자선 예산은 연간 60만 달러로, 예술가들이 선택한 다양한 이니셔티브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크리에이티브 실무자들에게 이 기관을 제공함으로써 모든 면에서 더 나은 기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300만 달러 미만의 예산으로 상징적인 예술과 사회적 참여 기관을 모두 지원함으로써 상호 이익을 실현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새로운 움직임은 양심적인 예술가들에 대한 지원을 지속하는 동시에 사람들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목적과 전문성을 갖춘 이니셔티브와 단체에 대한 추가 지원을 도입했습니다. 이러한 노력에는 트위터에서 시작된 흑인 및 원주민 토지 권리 및 농업 이니셔티브와 불체자 노동자를 위한 연합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이 포함됩니다. 한 예술가는 이렇게 썼습니다. ".... 저에게 있어 위원회의 작업은 다차원적인 예술이 더 활기차고 축제적인 현실을 상상할 수 있기 때문에 예술은 예술이 아닌 모든 것에 의해 풍요로워진다는 중요한 생각을 키워줍니다." 이름도 없는 하이브리드를 포함하여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밥의 작품에 대한 대중의 이해와 영향력을 넓히기 위해 수많은 파트너와 함께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이는 부분적으로는 밥의 작품에 대한 새롭고 도발적인 해석을 제시한 학자들을 지원함으로써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헌터 칼리지의 미술사 교수진과 대학원생, 윈터서/델라웨어 대학교의 보존학 전공자들과 함께 밥의 스타일적 다양성과 재료에 얽힌 복잡한 문제를 밝히는 연례 강좌에 참여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2025년 밥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출시할 무료 디지털 카탈로그의 첫 번째 권을 제작하기 시작하면서 초기 작품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가진 14명의 예술가, 큐레이터, 학자 및 보존 전문가에게 에세이를 의뢰했습니다. 다양한 경력의 예술가와 학자들을 플로리다의 레지던시와 뉴욕의 아카이브에 초대하여 밥의 거침없는 창의성과 지적 관대함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슈워츠먼 앤 코(Schwartzman & Co)와 재단의 큐레이터들이 주도하여 밥의 작품을 이해하고 구매하는 데 있어 보다 총체적이고 전략적인 관점을 구축하는 것은 재단의 재정과 결과적으로 모든 프로그램의 미래에 좋은 징조입니다. 타데우스로팍갤러리, 그리고 최근에는 바바라글래드스톤갤러리와 므누신갤러리와의 여러 협업이 성공을 거두는 것을 보고 매우 기뻤습니다. 하지만, 지난 몇 년은 우리 사회의 문제와 취약성을 보여주는 고통스러운 그림도 함께 보여주었습니다. 예를 들어, 팬데믹과 조지 플로이드의 살해 사건은 공감 능력과 유동성을 유지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가장 원활하고 우아하게 혜택을 주기 위해 끊임없이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우리에게 일상이 되어가고 있는 의무를 강조했습니다. 우리처럼 진보적인 조직에서는 질병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위험 감수성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운영과 철학적 측면에서 민첩성이 높아진 덕분에 아티스츠릴리프(Artists Relief), 댄스페이스(Danspace), 로렌 할시의 서머베리탕 커뮤니티 센터(Lauren Halsey’s Summaeverythang Community Center), 비치 세션 댄스 시리즈( Beach Sessions Dance Series), 커즌(COUSIN), 오클랜드의 맘스 포 하우징(Moms for Housing in Oakland), 소노마 카운티의 쉘터우드 콜렉티브(Shelterwood Collective in Sonoma County), 아티스츠스페이스(Artists Space), 텍사스 국경에 있는 이민자 지원 단체인 투게더 앤 프리(Together and Free) 등 다양한 신규 및 재지원 단체의 긴급한 상황에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었습니다. 동료들의 이야기를 자세히 듣고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이 기회를 통해 이 격동의 시기에 조금씩 희망을 되찾았습니다. 또한 의료비 지원부터 무료 리허설 공간 제공에 이르기까지 예술가들을 위한 긴급 자금 지원 확대와 같은 새로운 프로그램도 알게 되었습니다. 밥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프로그램, 다가오는 전시회, 최근의 자선 활동 등 제가 떠나기 전에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특히 캡티바에 오픈 키친/거실과 음악 녹음을 위한 첫 번째 스튜디오를 포함한 여러 개의 스튜디오를 갖춘 환경 친화적인 시설이 완공되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이 시설은 WXY 건축+도시 디자인이 다년간에 걸쳐 설계한 프로젝트로, 기존 10개의 건물과 20에이커 규모의 조경의 지속 가능성을 향상시켰습니다. 그리고 기적적으로도 이 모든 건물은 허리케인 이안의 맹공격 이후에도 여전히 건재합니다. 저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은 헌신적이고 열린 마음을 가진 이사회 및 직원들과 함께였기에 가능했습니다. 밥의 작품에 내재된 실험적 자유에 대한 열정과 그의 가치가 오늘날 어떻게 가장 자유로운 형태를 찾을 수 있을지 상상하며 함께 해준 재단 관계자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특별한 사람들과 함께 일했습니다. 특히 도전적인 아이디어를 결코 외면하지 않았던 이사회 의장 마이클 스트라우스와 아버지의 유산을 소중히 여기며 우리 모두에게 매우 높은 기준을 제시한 크리스토퍼 라우첸버그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예술을 만들고 공감하는 삶을 사는 데 있어 밥 라우첸버그 특유의 유쾌하고 반응이 빠르고 경건한 접근 방식을 흡수할 수 있었던 것은 저에게 변함없는 즐거움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놀랍도록 민첩하고 대담하며 매우 진지하고 재정적으로 안정적인 기관이 되었으며, 이는 새로운 리더를 위한 매력적인 조건입니다. 이사회는 즉시 후보자 물색에 착수할 것이며, 저는 새 상임이사가 저와 마찬가지로 재단을 위해 놀랍고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기대가 됩니다! 캐시 할브라이시” ![]() *아트인컬처 2023년 1월호 포커스 지면 기고문의 미축약 미교열 초고. 귀한 지면을 주신 편집부(김해리 기자님)에 감사드립니다. 자료 제공 등 취재에 적극 협조해주신 타데우스로팍갤러리(담당 김해나 기획자님)에도 고마움을 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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