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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06월 29일
![]() 2012년 런던 올림픽 로고가 대중의 거센 비판을 통해 유명세를 타고 있다. 1980년대의 포스트-모던 그래픽 디자인을 연상시키는 기하학적 형태와 다소 키치적인 색상이 보수적인 런던 사람들의 심기를 건드린 모양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로고를 홍보하는 TV광고 영상을 본 일부 간질 환자들이 발작 증세를 보임에 따라 비판 여론에 불이 붙었다. (런던 올림픽의 로고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유달리 도드라지는 까닭은, UCC[사용자 제작 컨텐츠]가 돋보이도록 재편된 인터넷 미디어 환경과 영국 특유의 황색 언론이 맞물린 묘한 상황에 있는지도 모른다.) 일군의 반대론자들은 월프 올린스 사(www.wolffolins.com)가 디자인한 이 로고가 남녀의 성행위 장면을 연상시킨다든가, 나치의 스와스티카(하켄크로이츠)와 닮았다고 주장하며 여론몰이를 하는 모양인데, 솔직히 말해 아무리 봐도 그렇게까지 의미심장한 디자인으론 뵈지 않는다. (문제는 실제로 홍보 영상을 보고 멀미 증세를 느낀 사람들이 적잖다는 것이다. 그들은 디자인의 좋고 나쁨을 떠나 어떤 식으로든 불쾌감을 표출하기 마련이다.) 나라면, 차라리 이런 음모론을 펼쳐보겠다: “광고 영상 제작자들이 홍보 효과를 위해 일부러 어린이 시청자들의 광발작 증세를 야기했던 포켓몬스터의 영상을 벤치마킹했다!” 물론 세상에 그렇게 통이 큰 디자이너가 있을 리 없다. 디자이너들은 예술가들에 비하면 아주 소심한, 소시민적 족속이기 때문. 아무튼, 2012년 런던 올림픽 로고는, 패리스 힐튼의 생존 전략과 비슷한 수순을 밟으며 큰 홍보 효과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그래봐야 로고여서, 섹스 동영상도 없고, 파티도 못 열고, 상습적인 음주운전 끝에 감옥에 갇히는 드라마를 연출하지도 못한다.) 자고로 디자인이란 대중의 큰 관심사가 아니어서 좋건 나쁘건 큰 화제를 모으기는 어려운 법. 로고 하나가 이렇게 열띤 비판 여론을 불러일으킨 사례는, 히틀러 총통의 로고와 휘장(혹은 그 아류작들)을 제외한다면, 현대 디자인의 역사를 통틀어 거의 유일한 것 같다. 그래서일까, 디자이너들(알고 보면, 사회에서 다소 소외감을 느끼는 ‘유사 전문직’ 종사자들)의 반향도 뜨겁다. 2003년 런던 올림픽 CIP(코퍼레이트 아이덴티티 프로그램) 공모에서 탈락한 바 있는 그래픽 디자이너 데니얼 이톡(www.danieleatock.com)은, 독자적으로 자신의 올림픽 로고의 개발을 진행하는 중이다. 디자인의 문제엔 디자인으로 답하겠다는 식이다. 올림픽의 오륜을 과녁의 형태로 재정렬한 그의 로고는 상당히 문제적이지만, 사실 나는 확정안이 더 마음에 든다. 이상한 비정형 그리드에 맞춰 제작된 2012년 런던 올림픽 로고는, 전혀 ‘아방’한 척 하지 않으면서 약간 심통 사나운 면도 있는 꼴이 딱 영국 도시인들을 빼닮았다. 자, 그렇다면 로고는 정말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 디자이너들은 로고 아니, CIP을 얼마나 잘 운용하느냐에 따라 회사의 흥망이 갈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실제론 별로 그렇지도 않다. 망해가는 회사가 주주들에게 사기를 치기 위해 새로운 CIP를 도입하는 경우가 없지 않지만, 그건 일종의 ‘망조’일뿐, 디자인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이렇게 말하면, 디자이너들이 실망하겠지만, 대략 잘 디자인된 로고라면 어디든 잘 어울리는 것이 대형 법인체 로고의 속성이다. 대표적인 예가 KBS의 로고다. 한국 디자인계의 전설에 따르면, KBS의 로고는 사실 서울올림픽의 공식 휘장 디자인 공모에서 1등을 한 작품이다. 국내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이 국제공모를 주도한 이는 한국의 기업 문화에 합리적 CIP 개념을 정착시킨 그래픽 디자인계의 태두 조영제 선생이다. 이야기인즉, 국제 공모에서 1등작을 뽑았지만, 그의 마음에 드는 한국적인 디자인이 없었다는 것. 그는 내심 삼태극을 활용한 디자인을 바라고 있었지만, 파이널리스트에 삼태극을 활용한 로고는 하나도 없었다나. 결국 올림픽 조직위는 다시 지정 공모를 실시했고, 그 때 1등작으로 확정된 것이 만인이 기억하는 양승춘의 삼태극 휘장이다. (당선자는 자신이 삼태극의 아이디어를 냈다고 증언하고, 심사자는 자신이 삼태극의 아이디어를 흘렸다고 증언하지만, 1983년의 일이니 진실은 오직 신만이 기억할 것이다.) 아무튼, 국제공모를 통해 뽑은 CIP를 사용하지 않았으니 문제가 될 판이었을 터. 조영제 선생은 정치적 수완을 발휘해 해당 디자인을 KBS의 새로운 로고로 사용할 수 있도록 주선했다 전한다. KBS 로고의 디자인 회사로 알려진 심팩트 측이 원안의 어디를 얼마나 수정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애초 올림픽을 위해 제작된 로고는 지금도 아무 문제없이 KBS를 대표하는 상징 노릇을 잘 하고 있다. 기억나지 않는 이름의 동유럽 디자이너가 만든 이 로고는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보기에 아름답고 기능에도 전혀 문제가 없다. 정말 CIP 디자인은 중요할까? 샤머니즘적 시각에서 보면, 그럴 수도 있다. 어번 힙스터의 취향을 대변하는 3류 유명 디자이너인 카림 라시드(www.karimrashid.com)에게 새로운 CIP를 의뢰해 최근 로고를 일괄 교체한 한화의 경우를 보면 충분히 그렇다. 새로운 디자인을 공개한 뒤, 카림 라시드가 국내 일간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뱉은 첫 한 마디는 이랬다: “나는 그래픽 디자이너가 아닌데 왜 나에게 로고 디자인을 맡기기로 결정했는지 모르겠다.” (하긴, 한화의 신비한 의사 결정 구조는 범인의 머리론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나저나, 현재 폐기된 로고를 재활용하는 아주 흥미로운 공모전이 진행 중이다. 삼성전자의 옛 로고를 재활용하는 아이디어를 모으는 ‘별 셋 디자인 공모전’이 그것이다. 공모의 안내문에서 주최자인 디자인 듀오 ‘슬기와 민’(www.sulki-min.com)은 “디자인에서 ‘혁신’은 과대평가되는 가치”라고 단정 짓더니, “사라진 닷컴 기업들의 로고를 공공재로 환원시켜, 신생 기업들이 사용할 수 있게 하자”는 디자이너 데이비드 라인퍼트(www.dextersinister.org)의 제안을 인용하고는,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과제를 던졌다: ![]() “제시된 디자인은 삼성전자가 1993년 현재의 아이덴티티를 도입하기 전까지 광범위하게 사용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쓰이지 않는 상표입니다. 이 디자인의 새로운 용도를 제안해 주십시오. 다른 기업이나 단체 상표로의 활용 방안도 좋고, 그 밖에 CI와 거리가 먼 다른 용도도 좋습니다. 단, 주어진 디자인을 존중해야 합니다: 필요한 경우 약간의 변형은 무방하지만, 그 범위는 '새로운' 디자인을 창조하지 않는 선에 머물러야 합니다. 경우에 따라 색상은 자유롭게 구사해도 좋습니다. 출품작의 형식에는 제한이 없지만, 제안의 이해와 소통이 가능해야 합니다.” 마감은 10월 31일까지, 문의는 threestars@sulki-min.com로. ‘반창조적 디자인의 창조’에 관심 있는 여러분의 많은 참여를 바란다. 미술ㆍ디자인 평론가 입력시간 : 2007/06/28 19:48:09 | 수정시간 : 2007/06/29 23:50:10 *필자가 제안한 제목: "로고는 정말로 힘이 세다?: 런던 올림픽 로고 논쟁을 통해, CIP 디자인의 효용을 다시 생각한다." / **원고가 길어서 지면화 과정에서 뭉텅 잘렸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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