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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6월 16일
_ "[임근준의 이것이 오늘의 미술] 아카세가와 겐페이의 '천엔 지폐 사건'"
아카세가와 겐페이(赤瀬川原平, b.1937)는 전후 일본의 아방가르드 예술을 이야기할 때 결코 빠뜨릴 수 없는 흥미진진한 인물이다. 요코하마 출신의 청년은, 동경올림픽이 열리기 전해인 1963년 5월, 동년배인 다카마스 지로(高松次郎), 나카니시 나쓰유키(中西夏之)와 함께 하이레드센터란 이름의 전위예술그룹을 결성했다. 조직의 알쏭달쏭한 이름은 다카마스, 아카세가와, 나카니시 3인의 이름 앞 글자 -- 高(high), 赤(red), 中(center)을 모아 영역한 결과다. 하이레드센터는, 캔버스와 의자 따위를 포장지와 밧줄로 결박한 채 작품으로 전시하거나 온몸을 빨래집게로 집어놓고는 ‘예술 테스트’라고 주장하는 등, 상식을 뒤엎는 행동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이는 오카모토 타로(‘일본의 피카소’쯤 되는 인물) 같은 앞 세대의 예술가들이 청년들에게 던진 질문 -- “오늘날 예술은 무엇인가?”에 대한 강렬한 화답이었다. 물론 청년들의 일관된 논리는 “이것도 예술이 아니고, 저것도 예술이 아니다”라는 것이지만. 평론가 나카하라 유스케는, 하이레드센터의 전시회 초대장에 게재한 단문에서, 이들을 이렇게 소개했다: “이들은 유쾌한 음모가 집단으로 [...] 하찮은 것을 작품의 소재로 삼아 사람들을 감동시킨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이 세상에 너무 많은 작품들을 따돌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예술을 접할 때 느끼는 강한 감동과 만연한 무관심 양쪽에 덫을 놓으려하고 있다.” 이는 아주 적절한 묘사였지만, 치기 어린 청년들은 ‘유쾌한’을 ‘불쾌한’이라고 고쳐놓고는 ‘예기치 않은 오타’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계획된 넌센스’의 특징은, 동료들에게 강매한 통조림 캔에서도 잘 나타난다. 라벨 표시가 없는 캔은 약 일곱 종류로, 황당한 내용물을 담고 있었다. 예를 들어, 화가 시노하라 유시오가 울며 겨자 먹기로 산 캔에는 솜뭉치로 둘러 싼 깡통따개가 들어있었다. 깡통따개가 없어서 망치와 못으로 겨우 깡통을 딴 구매자는, 내용물을 보자마자 격분, 망치를 내던졌다고 전한다. 이렇게 ‘뒤통수를 치는’ 전략은 결국 큰 문제를 야기했다. 아카세가와의 <모형 천엔 지폐> 연작 일부가 위폐로 간주돼 법정에 소환된 것이다. 쇼토쿠 태자가 그려진 천엔 지폐를 실물 크기로 인쇄해 포장지로 활용한 것이 화근이었다. 1966년 도쿄 지방 재판소 701호에서 시작된 소위 ‘천엔 지폐 사건’의 공판은 대단히 흥미진진하게 전개됐다. 자신이 행한 일이 ‘예술’이 아니라면, 결국 ‘범죄’가 돼, 유죄 판결을 받을 판이었다. 그러므로 작가는 여태까지의 주장을 180도 뒤집어, “이것도 예술이고, 저것도 예술이다”라는 논리를 폈다. 호기어린 작가는 ‘이것’과 ‘저것’을 증거물로 제시하는 과정에서 재판을 아방가르드 퍼포먼스의 기회로 십분 활용했다. 각종 작품을 재판정에 보기 좋게 늘어놓고는, 하나하나 진지하게 판사 앞에서 펼쳐보였다. 다카마쓰의 끈 작업을 질질 끌어 재판정 바닥 전체에 늘어놓고는, 법정 사진사에게 제대로 예술을 촬영하라고 요구하고, 누드 청사진 두루마리를 펼쳐 재판정을 황당한 스펙타클의 경연장으로 전환시켰다. 압권은 나카니시의 빨래집게 작품이었다. 하이레드센터 일당은, 퍼포먼스의 대가인 히지카타 타츠미의 제자를 데려다가 온몸을 빨래집게로 집어놓고는 ‘현대예술을 설명하는 증거물’로 제시했다. 한 시간 넘도록 진행된 “이것도 예술이고 저것도 예술이다”라는 요지의 진지한 호들갑이 끝을 맺고, 변호인과 피고인이 자리로 돌아갔다. 문제는 예술품으로서 법정을 서성거리던 빨래집게 청년. 재판장이 “이제 당신의 역할은 끝났으니, 제자리로 돌아가 주십시오”라고 말하자, 작품은 이렇게 되물었다: “저, 저는 어디로 돌아가야 합니까?” 재판장은 말문이 막혔다. 청년이 방청석으로 돌아가면, 작품이 아니라는 말이고, 작품이라면, 변호인 석 뒤편에 증거품들과 함께 보관돼야 했다. 잠시 정적이 흐른 뒤, 폭소가 터졌다. 젊은 예술가들의 한판승이었지만, 결과는 유죄였다. 두 차례 항소했지만, 1970년 아카세가와는 유죄확정판결(징역 3개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재판은 구속받기 싫어하는 예술가의 의욕을 꺾는데 제격이다. 유죄 판결 이후 아카세가와도 뭔가 생각이 바뀌었던 모양이다. 이후로는 미술보다는 글쓰기에 의욕을 보여, 수필가 혹은 소설가로 이름을 날렸다. 문학 작품을 발표할 때는 오츠지 카츠히코(尾辻克彦)란 필명을 썼다. 오츠지는 1981년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다. 수상작인 <아버지가 사라졌다>는 기승전결이 없는 대화 중심의 소설이다. /// ![]() ![]() ![]() **데스크의 최종 제목: "아카세가와 겐페이의 '천엔 지폐 사건' - '非예술을 갈구한 예술' 법정에서 펼친 아방가르드" ***편집 디자이너가 많이 피곤했는지, 최종 지면은 한글 파일을 txt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물음표 모양으로 깨지는 한자를 과감히 생략하고 있다. (정말 미치겠다.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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