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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03월 11일
46년간 우주를 방랑하는 난조 노란색의 '민짜 대갈통'에 소위 '중앙집권형 얼굴'을 한 공허한 눈빛의 외계인 왕자 - 난조 복솔Nanzo Boxoll. 수많은 대한민국의 목 없는 국회의원들처럼 머리와 몸이 구분되지 않는 이 감자형 몸통의 생명체는 혐오스럽도록 짧은 두 팔에 손가락도 없고, 다리는 언제나 가위모양으로 엇갈려있다. 1997년 4월, 조경규가 자신이 운영하는 '피바다학생전문공작실Pibada Students' Workshop'의 웹사이트(현재 주소: http://pibada2.com)에서 선보인 이 전대미문의 캐릭터는 당시 나이 마흔 여섯으로 창조되었으니 올해로 나이 쉰 둘이 되었다. 따져보면 난조는 1952년 생이 되는데,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작가가 웹사이트에 올려놓은 설명에 따르면, 이 노란 머리통의 왕자는 뇌를 가지고 있지 않아 머리통에는 단백질과 기름 덩어리만 가득하다고 한다. 고로 난조의 입은 언제나 벌어져있고, 말은 거의 하지 못하는 것이라 한다. 난조의 태생은 실로 불우하다. 제4부 "난조의 고향Hometown"(1998년 3월 30일 발표)에 따르면 그 이야기는 이렇다. 난조는 혹성 복솔의 곤로 성에서 정상적인 외계인 왕과 왕비 사이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카이저 수염을 기른 아버지와 눈물 많은 어머니, 그리고 머리에 리본을 단 누나는 새로 태어난 아기가 기형이라는 사실에 경악했다. 난조는 토끼 입 모양 대신에 인간의 입 모양을 지녔고, 다섯 손가락을 지닌 두 손 대신에 손가락이 없는 동그란 주먹 두 개만 달고있었으며, 길고 곧은 두 다리 대신 가지런하게 펴지지 않는 고정된 엑스형 다리를 갖고있었던 것이다. 기형으로 태어난 아들을 못마땅하게 여긴 왕은 곧 결단을 내렸고, 어머니와 누나는 아버지를 말리지 않았다. 왕은 벌목용 전기톱을 사용해 왕자를 반으로 갈라버리고는 쓰레기 비닐에 담아 문밖에 내놓는다. 하지만 왕과 왕비와 딸이 아침 식사를 시작하는 순간, 난조는 불사조처럼 다시 제 모습으로 돌아온다. 그 장면은 마치 예수재림을 방불케 한다. 화가 난 아버지는 아들의 재림에 개인 화포로 답한다. 난조의 머리를 단 한 방에 날려버린 왕은 가장답게 경악하는 부인과 딸을 다독거려 아침 식사를 마저 마치고자 하지만, 난조는 다시 즉석에서 부활한다. 무능력할 것으로 보였던 난조는 죽지 않을 뿐만 아니라 걷지 못하는 꼬인 다리로 잘도 뛰어다녔으며, 손가락 없는 주먹만으로도 과자(나초)를 잘도 집어먹었다. 어린 난조가 나초를 죄다 집어먹은 데에 분개한 왕은 아들 난조를 우주선에 처넣고 먼 우주로 날려보내고, 이후 어린 난조(당시 나이 생후 2시간)는 46년 동안 방랑하게 된다. 그 긴 세월 동안 남동생 넥쏘Nexo가 태어났고, 난조의 어머니는 죽었으며, 누나는 시집을 갔다. 허나 46년이 다 지나고, 때마침 아버지의 임종 직전에 혹성 복솔로 돌아온 난조는,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를 아버지의 마지막 손가락질에 따라 왕위를 계승하게 된다. 온라인 서사 만화 [외계 왕자 난조]는 본디 이렇게 저주받은 외계인생으로 방랑하는 왕자 난조의 46년을 그리는 기획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지난 43년간의 여행을 담고 있다는 난조의 사진첩이 연재의 골자를 이룰 예정이 아니었을까. 물론 종종 왕으로서의 난조를 보여주는 에피소드도 가능했을 터이다. 하지만 [외계 왕자 난조]는 제5부의 연재를 마지막으로 돌연 중단되었고 이후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다. 미완의 방랑기 [외계 왕자 난조]의 제1부 "하나뿐인 친구My Only Buddy"(1997년 4월 20일 발표)는 불시착하는 난조의 우주선에 하나뿐인 친구를 잃은 넥타이 맨 남자가 난조의 불사성을 이용해 돈을 벌다가 빨간 머리 소년에게 살해당한다는 이야기다. 어려서 불우하게 살았다는 남자는, 칼로 저며버리건, 권총으로 머리를 날려버리건, 수류탄을 뱃속에 쑤셔 넣건, 언제나 되살아나는 난조를 보며 자기연민을 느끼기 시작한다. (난조가 박살나는 장면을 보면 머리 조각 안에 뇌처럼 생긴 무엇이 그려져 있고, 또 멀쩡히 척수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난조는 구조화된 문장을 말하기도 한다. 따라서 난조가 무뇌아라는 작가의 설명은 조금 과장으로 보인다.) 허나 그가 난조를 신의 선물로 여기며 눈물을 흘릴 적에 그는 갑자기 빨간 머리 소년에 의해 살해당하는데, 소년은 제1부의 마무리 대사로 아주 의미심장하게 들리는 말을 남긴다. "누구든 난조를 가질 수 있지만, 누구도 난조를 이용할 순 없어. 자넨 욕심이 너무 많았어, 친구." 하지만 지능 지수가 낮은 난조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 제2부 "어서와 난조Welcome Home"(1997년 7월 14일 발표)는 난조의 우주선이 어느 조선 소녀의 집을 부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집을 잃은 분노에 쇠스랑을 휘둘러 난조의 머리를 날려버린 소녀는 난조에게 묘한 애정을 느끼기 시작하더니 난조가 자신의 어릴 적 동무임을 기억해낸다. 소녀는 즉석에서 부활한 난조를 제 자식처럼 예뻐하며 괴롭힌다. 그러나 난조에 대한 소유욕에 빠진 소녀가 난조를 말뚝에 묶어놓고 학교에 가버리자, 제1부에 등장했던 빨간 머리 소년이 나타나 난조를 풀어준다. 일체의 소유욕 없이 난조를 사랑할 줄 아는 것으로 보이는 이 빨간 머리 소년은 난조에게 초코바를 먹이고 손에 편지를 매달아둔다. 용의주도한 소녀는 자신의 남자 친구와 함께 난조를 금세 찾아내고, 이내 편지를 펴 읽는다. 편지엔 난조에게 잘해주라는 소년(편지에 따르면 이름이 '복고'다)의 경고가 적혀있지만, 소녀는 복고쯤은 문제도 되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복고는 멀리 사라지는 소녀와 소녀의 친구, 그리고 난조를 보며 어깨가 젖도록 눈물을 흘린다. 머리가 크고 어깨가 좁은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개에게 닭 뼈를 주면 안되듯 난조에게도 닭 뼈를 던져주면 안 된다는 사실이다. 난조가 닭 뼈를 삼키면 머리가 터지는데, 사실 곧 제 모양으로 복원되므로 닭 뼈를 주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머리가 터질 뿐이다. 소녀의 남자친구는 야구 방망이로 난조의 머리를 날리며 논다. 영락없는 보통 가족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렇게 난조와 단란하고 끔찍하게 지내는 소녀의 삶은 복고에 의해 끝을 맺는다. 복고는 일단 난조에게 총을 쏜 뒤, 난조가 정신을 차리기 전에 소녀와 소녀의 남자친구의 머리를 날려버린다. 제 모습으로 돌아온 난조가 영문을 알 리 없다. 제3부 "고통이 가득한 집2House of Another Pain"(1997년 10월 13일 발표)는 미로처럼 끝이 없을 것 같은 복도에서 벌어지는 유혈이 낭자한 총격전으로 시작한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제3부는 "고통이 가득한 집House of Pain"(1996)의 속편이기도 하다. 속편에서는 헬멧을 쓴 자들과 쓰지 않은 자들이 서로 맞서 싸우는데, 이유는 알 수 없다. 전편에서와 마찬가지로 끝없는 살육의 사슬이 이어질 뿐이다. 속편의 서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마지막 장면이다. 머리를 모두 뒤로 빗어 넘긴 소년이 날아오는 총알을 도끼로 막아보려 손을 뻗는다. 손을 내뻗어 도끼를 쥐려는 그 찰나의 순간 "만약 내가 난조라면... 총알이 내 머리통을 부수어 놓는다 해도 괜찮을 텐데. 그치만 난 난조가 아니잖아"라는 생각이 소년의 머릿속을 스친다. 소년은 용케 도끼로 총알을 막는데 성공하지만, 결국 적의 총알 세례를 받고 죽는다. 바로 그 때 난조의 우주선이 복도의 천장을 뚫고 내려꽂히며 소년을 죽인 사람을 뭉개 죽인다. 우주선을 빠져 나온 난조는 손수건으로 이마를 닦다말고 머리통과 두 팔이 날아간 소년의 시체를 본다. 난조는 운다. 소년과 필경 특별한 사이였던 것이다. (사실, 확실치는 않다. 혹시 난조는, 머리와 두 팔이 없는 소년의 시체를 보면 자동적으로 눈물을 흘리는 지도 모른다.) 그때 복고가 나타나 또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한다. "난조, 살다보면 이런 일도 있는 거야. 그런데도 다들 이렇게 살아가지" 이쯤 되면 무슨 게이 에로틱 버디 무비 같아진다. 오, 난조... 제5부 "혹성 피Planet P"(1998년 7월 13일 발표)는 난조의 소년기를 보여주는 데, 이 에피소드는 사실상 이야기의 종결을 의미한다. 아파트만큼 거대한 로봇 P-3000은 욕을 엄청 잘 하는데, 소년 난조에게 감동한 나머지 그만 난조에게 인생의 현실을 보여주기로 작정한다. 담배를 꼬나 문 로봇은 난조를 어디론가 데려가 난조에게 부서진 난조의 우주선을 보여준다. 사실 난조의 여행과 모험은 이미 소년기에 끝장난 것이었다. 난조는 그렇게 13살의 나이로 눈물 젖은 담배 맛을 배웠고, 2026년에 다시 보자는 메시지와 함께 연재는 중단된다. 조경규 근대 이후의 모든 예술가들이 청년기에 그러하듯, 조경규는 리하르트 바그너처럼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작업의 소재로 삼았다. 서른 한 살의 바그너가 [방황하는 네덜란드인Der Fliegende Hollander]을 통해 성인으로서의 자신과 작가적 정체성 모두를 챙겼다면, 스물 다섯 살의 조경규는 [외계 왕자 난조]를 통해 더 이상 성장기 소년이 아닌 자신과 작가적 정체성 양자를 챙겼다. 물론 성인이 된 후에도 자신을 표현하는 데 시간을 보내면 삼류 예술가가 되고 만다. 사실 사람들이 말을 아껴서 그렇지, 절대다수의 예술가들은 삼류다. 어느 작가가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작업을 통해 멋질 수 있는 시간은 대개 5년, 길어야 10년 정도다. 30대 초반에 요절한 작가들이 인기가 많고 영원토록 멋진 이유는 그 유예기간을 넘기지 않고 죽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그 유효기간이 다하도록 자기 표현에만 매달리다가 추하게 늙은 흰머리 소년으로 예술 인생을 마감하고 만다. 바그너는 저주받은 유령선의 선장이 순결한 처녀의 거짓 없는 사랑을 통해 구원받는다는 내용의 [방황하는 네덜란드인]를 창작하며 음악적으로 약진할 수 있었고, 이후 새로운 지평에서 위대한 반지 연작을 작업할 수 있었다. 따라서 자칭 바그네리안들 가운데 몇몇이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을 두고, 베르디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 청년작에 불과하다고 평가하는 것은 갑갑한 노릇이다.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은 바그너의 음악세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관문 가운데 하나이고, 그 입구를 지나지 않고서는 바그너의 세계를 이야기할 수 없는 노릇이다. 왜냐하면, 바로 바그너 자신이 저주받은 유령선의 선장이고, 그 우울하고 불안한 게르마니아의 근대인(혹은 방황하는 네덜란드 인)을 구원하는 것은, 빛처럼 순수하고 정결한 광기의인 사랑, 혹은 그에 대한 맹목적 믿음이기 때문이다. 사실 바그너는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을 통해 음악적으로만 성장한 게 아니다. 후일 그가, 소실점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유사-파시스트적 모더니스트pseudo-fascistic modernist로서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의 작업을 통해 이룩한 지적·감성적 성과 덕분이었다. 마찬가지로, 조경규는 [외계 왕자 난조]를 통해 탈-인간적인post-humane 성인으로 무사히 성장한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앞으로도 그의 작업을 이해하기 위해선 [외계 왕자 난조]를 영원토록 언급해야 할 지도 모른다. 난조는 한참 성장하고 있는 조경규의 작업세계로 들어가는 입구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설적이지만, 난조의 연재가 일찍 종결된 것은, 작가의 정신적 격변이 꽤 짧은 시간이 완수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외계 왕자 난조]는 저자 조경규가 자신의 소년기를 종결하는 일종의 자기 치료적 작업으로 독해될 수도 있다. 사실 [외계 왕자 난조]를 눈 여겨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캐릭터가 작가 자신의 분신임을 눈치챌 수 있다. 특히 그의 사진을 보면 난조와 거의 똑같이 생겼기 때문에, 별다른 생각의 여지가 생기지도 않는다. 나는 작가를 만나 이 전대미문의 캐릭터의 이름이 왜 난조냐고 물었다. 저자는 그 캐릭터의 이름에 '조'는 꼭 들어가야 할 것 같았고, 앞에 '난'을 붙이니 멋지더라고 답했다. 캐릭터의 이름마저도 '나는 조경규'의 줄임 말이었던 것이다. 물론 작가는 '난조'란 이름이 그러한 뜻으로 독해되기를 바라지는 않았을 터이다. 조경규는 어려서부터 유혈이 낭자하도록 사람을 찢어발기는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내성적이고 명민한 사춘기 시절을 보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남자의 머릿속에서 진행된 상상의 그림은 아마 그의 최신작 [당근](2002)에 구현된 인체 훼손의 이미지와 가장 흡사하지 않았을까 싶다. 따라서 어린 시절의 그가 자신의 그림에 죄책감을 느꼈을 것은 당연하다. 그러한 상상의 에너지는 물론 젊은 청년을 화나게 하는 제도나 관습, 혹은 잘못된 교육제도 따위에서 온 것일 터이다. 따라서 [외계 왕자 난조]를 전후로 한 작업에 등장하는 난투극과 신체 훼손의 장면들은, 표현의 테크닉이 채 무르익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감정적이고 잔혹한 느낌을 준다. [외계 왕자 난조]와 [홍콩]의 쌍곡선 반면 [홍콩Hong Kong](2000)에 구현된 신체 훼손의 이미지는 대단히 잔혹하고 정밀하지만 매우 차갑고, 무정해 보인다. 이미 조경규의 잔혹 미학은 2000년에 이르러 새로운 단계에 도달한 것이다. [외계 왕자 난조]와 하나의 유의미한 쌍을 이루는 것으로 보이는 [홍콩]은 작가 자신이 소년기에 획득한 반자동적인 신체훼손의 상상력을 추억하는 작품이다. 회고는 과거와의 분절, 그리고 그로 인한 자아의 변형을 낳는다. 따라서 감정이 배제된 잔혹함의 등장은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홍콩]에서 작가는 이 이야기가 육체를 훼손하는 상상으로 타인들을 향한 분노를 삭이던(정확히 말해, 신체훼손을 그리는 것으로 타인들과의 불공평한 관계 맺기에서 야기되는 감성적 에너지의 불균형 상태를 해소해냈던) 소년 조경규에 대한 것임을 숨기려 하지 않는다. 담담하게 진술되는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은 어느 날 우연히 발견한, 신체훼손의 이미지에 대한 자신의 도착적 권능과 상상력을 언급하고, 곧이어 국어, 영어, 수학 선생의 머리를 차례로 부순다. 고등학교 시절, 조경규는 분명히 국·영·수 선생의 머리를 요리조리 바수는 그림을 그리느라 수업시간을 허비했을 터이다. 이야기의 끝에서, 17년간 주인공을 따라다닌 '머리통을 부수는' 초능력과 '공중에 떠오르는' 초능력은, 5명의 머리가 짜개지는 4시간 여의 대수술 뒤 사라진다. 그리고 그 다다음날, 주인공은 차에 치어죽는다. 이 만화는, "죽지 않으려면 죽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죽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을 만큼 죽고 싶었다. 그게 그때의 솔직한 내 심정이었다"는 주인공의 독백으로 끝을 맺는다. 이러한 설정은 이 작품이, 소년 조경규의 마지막을 추억하는, 즉 자신의 성장기에 바치는 최고의 오마쥬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난조는 이제 '과거'에 불과한 것인가? [홍콩]에서 주인공이 노려보는 사람들의 머리통이 두 쪽 나는데 반해, [외계 왕자 난조]에서 주로 수난의 대상이 되는 것은 작가 자신의 분신인 난조이고, [당근 - 1화 자진납치]에서 난자 당하는 것은 주인공과 주인공을 '자진납치'의 형식으로 모셔간 외계인들이다. [당근]은 아무리 고쳐 생각해보아도 작가의 유학 경험담이다. 자진해서 떠한 유학이 알고 보면 문화적 납치이고, 미국인들의 교육 시스템이 자신에게 선사한 것은 열린 뇌와 눈에 박힌 당근이더라는 말인가? 엄마가 좋아할 비행선 탑승기념 선물이란 것은 유학 가서 받은 졸업장인가? 외계인들 무찌르고 집으로 돌아가니 기분이 째진다는 말은, '서양물'이 별것 아니더라는 걸 깨닫고 서울에 돌아오니 기분이 '아햏햏'하다는 말인가? 이쯤 되면 조경규의 신체훼손 예술이, 특정한 미학적 고지에 도달하기 위한 창작 여정에서 거의 막바지에 다다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조경규는 요즘 디지털 사진 작업과 한 가닥으로 이어지는 국수 그리기에 힘을 쏟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앞으로 주목해 볼만한 작업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보다 연재가 중단된 또 하나의 미완성 작업인 [불타는 감자Burning Potato](2001-2002)의 높은 미학적 완성도와 탄탄한 서사성에 주목한다. (좀 과장하자면, 이 작업은 [트리스탄과 이졸데:Tristan und Isolde]에 비견할만한 명작으로 완결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게다가 작가에게 물으니, "조만간 끝이 날 것-"이라고 답하는 게 아닌가. 오, 역시. 하지만, 역시 아쉽게도 난조의 경우, 작가가 작업 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기에, 작가의 심경에 큰 변화가 생기지 않는 한, 완성될 가망은 거의 없어 보인다. 가여운 난조. 그렇다면, 난조는 그렇다면, 난조는 명징한 분석의 대상이 되어도 좋다는 것이 확인된 셈이다. 작가가 난조 연작이 사실상 종결된 것임을 확인해 주었으므로, 이제 난조는 비평과 메타 비평의 쌍칼로 얼마든지 찌르고 찢어발겨도 된다. 봉합도 필요 없다. 어차피 난조는 죽지 않을 테니까. 난조는 오늘날 만인이 가슴 속 깊이 지니고 있는, 각각의 미성숙 과잉 자아로 만들어진 괴물이다. 대개의 보통 사람들은 그것을 가슴 속 깊이 묻어두었으며, 어떤 이는 그것을 정체성의 정치학을 통해 상품화하고, 또 어떤 이들은 그것을 자유로이 풀어버려 자신의 친구 삼아 살아가기도 한다. 최악의 경우는 그것의 존재를 비밀에 부친 채, 마음 속 깊은 곳에 마련해둔 감옥에 처넣는 경우이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도 미성숙 과잉자아는 뇌 속에서 죽지 않고 영구히 살아남는다. 난조에게 뇌가 없는 것은 그것이 뇌의 일부, 죽, 뇌수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사실, 예술로 부와 명성을 얻기는, 소문과 달리, 그리 어렵지 않다. 세대별 미성숙 과잉 자아를 관통하는 특성을 파악하고, 그 과잉 자아들의 감금을 합리화하는 서사를 만들어주면 그만이다. 그러면 돈과 명예가 자동적으로 굴러 들어온다. 산업역군 세대에겐 지루한 고향 친구 타령이 그런 것이고, 386 세대에겐 역사와 혁명에 대한 나이브한 태도를 지녔던 자아를 자극하는 동시에 그것의 존재 불가능성을 조목조목 짚어주면 그만이다. 따라서 난조는 조경규에게 부와 명성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캐릭터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조경규는 난조에 흥미를 잃었다. 그렇다. 그는 배가 덜 고픈 것이다. 그는 프리랜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돈을 벌고 있기 때문에, 소위 '아방'한 작업을 하면서도 굶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역시 호구지책은 예술가의 생존에 필수적이다. 물론, 직접 버는 것보다는 돈 많은 애인을 하나 두는 편이 낫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경규는 앞으로도 디자이너로 돈을 벌 것이다. 왜냐고는 묻지 마시라. 답하기 곤란하다. 난조의 수많은 변주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난조는 몇 가지 재주만을 보여준 채 짧은 예술적 변신만을 보여주었다. 그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것은 메타 외디푸스적 소년 정체성을 통해 착취적 인간 존재의 비밀을 드러내는 재주였다. 타인의 내면을 악용하는 사람들과 착취적 사랑, 폭력적 가족관계 등을 매우 덤덤하게 그려내는 난조의 힘은 실로 대단했다. 처음 난조를 보는 사람들은 그 흉측한 신체 훼손의 장면에 압도되어 서사의 분석에 나설 뇌의 여지를 확보하지 못한다. 따라서 더욱 난조 서사의 힘은 파괴력이 강하다. 그 효과는 약장수의 기술, 혹은 치한 겸 소매치기의 권능과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동성애자 인권운동가로 일해본 경험이 있는 나는 특히 제1부의 이야기에 감동 받았다. 제1부를 90년대에 정체성의 정치학이 보여준 히스테리에 대한 우화로 독해한 것이다. 그 의도가 선하건 악하건 간에 소수자 운동가는, 소수자 정체성의 이름을 토큰 삼아 '가려진 정체성의 네트워크'로 무언가를 시도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들에게는 각자의 '난조'를 가지고 장사를 하자는 유혹이 던져진다. 나는 가까스로 장사의 유혹을 버리고 새로운 길을 떠났지만, 많은 이들은 아직도 '차이'를 장사의 밑천으로 착각한다. 허나 그러한 '차이'의 사업은 상업화할 수 없는 '차이'를 지닌 사람들을 착취하는 일종의 '치사한 욕망의 주식 투자' 같은 것이다. 그리고 뛰어난 투기꾼일수록 '전복의 힘', '아웃사이더', '탈주' 따위의 수사를 남발하는 법이다. 게다가 제1부는, 법인으로서의 불사성을 획득하고자 자신을 로고logo화하고, 더 나아가 스스로를 브랜드화branding하는 1990년대 문화예술계의 유행을 꾸짖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마사 스튜어트처럼 자신을 브랜드화하는 일은, 오늘날, 예술가가 할 짓은 못된다. 그러한 방식으로 보여줄 수 있는 예술은 이미 80년대 중반에 종결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난조 서사는 가운데가 비어있는 튜브로 구성된 특정한 그물망이기에, 정해진 독해 방법 같은 것은 없다. 허나 그 그물망은 단순한 통로의 구조는 아니다. 그것은 당신의 감정이 빠지기 쉬운 함정들과 당신 마음속의 타자를 자동적으로 일깨우는 리모콘들의 교묘한 종합체이다. 한마디로, 강제적 자아고찰의 위험한 여행을 강요하는 셈이다. 사실, 난조야말로 독자들에게 '자진납치'를 강제/유도하는 전형적 부비트랩이다. 따라서 나는 난조 서사가 대충 그린 로봇 P-3000의 폭로로 마감되는 것이 대단히 기분 나쁘다. 아무리 귀찮았어도 좀 정교하게 마무리해주었어야 옳다. 본디 애인하고 헤어질 때 더 매너가 좋아야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지금의 작가는 난조를 다시 손볼 생각은 없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왜냐하면 난조는 원형질로서의 미성숙 과잉 자아 = 동정소년의 언캐니한 섹슈얼리티 = 한시적 문화 상품 = 내밀한 차이의 정치 = 무정한 사랑의 숭엄 = 파괴되지 않는 삶의 쳇바퀴 = 착취적 인간 존재의 비밀을 처음으로 마주한 순간의 나(혹은 당신) = 메타 외디푸스적 소년 정체성 = 오랫동안 진화한 '방황하는 네덜란드 인' = 삶의 불확실성이 지목하는 어느 특정한 몸 = 무조건적인 주인공의 운명 = 과거의 조경규 = 완성된 미완성 이기 때문이다. 원로들의 말씀에 따르면, 모든 훌륭한 예술가들이 지나온 질풍 난조의 시기는 인생에서 다시 한번 스스로 손봐야하는 순간이 오게 마련이라고 한다. 눈밝은 독자라면 길게 두고 볼 일이다. 생각난 김에 나는 내 난조에 쌓인 먼지나 좀 털어 봐야겠다. 언제고 들이닥칠 노년의 어느 순간을 위해서 말이다. 사족 물론 작가는 난조 서사의 종결에 대한 사족으로 보이는 작업도 한 편 만들었다. [쏘세지Sausage](1999)가 그것이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악한 난조가 옹졸한 자아와 손잡고 사업을 벌이면, 그 민폐가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계몽주의적 알레고리가 작품의 골자이다. 따라서 [쏘세지]는 다분히 자기 반성적인 작업이다. 허나 독자 여러분께 당부드릴 것이 있다. [쏘세지]는 난조와 관련된 이야기이긴 하지만 아무나 봐서는 안 되는 작업이다. 특히 콤플렉스와 자가-인지된 트라우마를 자기 창작의 에너지원으로 삼는 이류 예술가들은 보면 큰일나는 작품이다. 이 작품 자체가 그들의 사업에 '쏘세지'가 되어줄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앗, 그러고 보니 이 글은 꼭 로봇 P-3000이 쓴 것 같질 않은가. 허허, 그것 참. ![]() * 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피바다 공작실의 난조를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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