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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 26일
대작은 미술계의 관행일까? 정말?
임근준 AKA 이정우 _ 미술·디자인 평론가 지난 5월부터 6월까지, 검찰이 화가로 활동해온 대중가수 조영남을 사기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는 과정에서, 참으로 다양한 억측과 곡해가 펼쳐졌다. 조영남이 직접 그림을 그리지 않고, 몰래 대작가(代作家) 송기창에게 작업을 의뢰해 완성 단계의 그림을 납품 받아, 그에 가필하고 서명한 다음, 제 작업으로 전시하고 판매했다는 정황이 널리 보도되자, 한국사회의 대중은 분노했다. 한데, 흥미롭게도, 현대미술을 책으로 공부한 전문가 일부가, 난데없이 조영남을 옹호하고 나섰다. 미술평론가인 내 입장에서, 언론에 보도된 부정확한 사실들만을 놓고, 현행법상 조영남의 대작이 사기죄에 해당하는지, 실제로 유죄 판결을 받게 될 것인지 등을 정확히 판단할 수 있지 않았기에, 언론의 인터뷰 요청은 모두 정중히 거절했다. 불필요하게 과열된 논란에 끼고 싶지 않은 마음도 컸다. (한데, 이미 대중의 분노는 미지근하게 식은 모습이다.) 그러나, 주요 언론이 인용하는 전문가의 발언에, ‘대작이 미술계의 오랜 관행이다’라는 내용이 있다는 점에는 다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대작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남을 대신하여 작품을 만듦. 또는 그런 작품.” 관행의 정의는 이렇다: “오래전부터 해 오는 대로 함. 또는 관례에 따라서 함.” 남몰래 대작가에게 신작 캔버스를 의뢰해 약간의 붓질만 더한 뒤 서명하고 제 작업으로 전시하고 판매하는 일이, 오래전부터 해온 관례에 따르는 창작 방식인가? 앤디 워홀도 조수에게 실크스크린 작업을 일임했던 바 있다고? 개념미술가들은 작업의 콘셉트만 지어내고 작업은 조수에게 맡김으로써 예술의 진본이 갖는 권위를 파괴했다고? 그러니까 조영남도 대작가를 숨겨놓고 현대미술의 실험 전통을 따랐던 셈이라고? 정말? 대작이 현대미술의 온당한 방법 가운데 하나라면, 한젬마의 저서 대필도 예술 활동이었나? 대충 아는 지식은 오판을 부른다. 송기창의 주장대로 그가 8년간 조영남씨의 대작을 맡아 기존의 ‘조영남 스타일’로 그려내고, 조영남씨는 그에 가필해 서명한 다음 유명세를 이용해 제 작품으로 팔았다면, 사기죄로 처벌하는 것이 마땅한 일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윤리적 타락에 저급한 미적 사기라고는 확언할 수 있다. 조영남의 사례를 개념미술 등의 사례를 들어 옹호하는 것은, 논리적 오류에 불과하다. 조영남은 발상과 노동의 분리로 미적 실험을 벌인 적이 없다. (그럼, 밀리 바닐리—음반 제작 과정에서 다른 가수를 시켜 노래를 부르게 하고 본인들은 립싱크를 하며 춤을 춰 인기를 끌었던 가수 듀오 그룹—도, 세상을 뒤흔든 개념미술가였을까?) 조영남-송기창의 경우와 같은 대작은, ‘작가는 콘셉트와 계획을 수립하고 조수는 법칙에 따른 노동을 수행해 작업을 귀결 짓는’ 현대미술의 개념미술적 방법론과는 전연 다른 것이다. 일각에선 ‘조영남은 화가도 아니다’라고 비난했지만, 웬걸, 열심히 창작하던 왕년의 그는, 꽤 문제적 미술가였다. 현대화가로서 1류가 못됐지만, 꽤 흥미로운 그림을 꽤 여러 점 그려냈다. 조영남은, 재스퍼 존스를 따라 태극기를 그리던 김민기를 보고 화투를 그렸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니까, 발상은 추상표현주의에서 팝으로 넘어가던 단계의 재스퍼 존스에게 빚을 지고 있는 셈. 한데, 최선을 다해 그리던 시절의 화풍은, 한국식 고색추상 앵포르멜이다. 아주 납작하고 텁텁해서 잘된 작품엔 아르-브뤼(Art Brut) 같은 고졸한 멋도 있다. 1960년대에 본인이 구경했던 한국식 추상미술에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즉, 조영남의 전성기 시절 그림은, 퍽 흥미로운 하이브리드로서, 나름의 가치가 있다. 나는 그를 ‘재미있는 2류’라고 평한다. 조영남의 과거 그림과 송기창이 대작했다는 그림은, 꽤 티가 나게 다르다. 전문적 미술 교육을 받은 바 없는 조영남은, 드로잉의 필치에서나 붓의 운용에서나 손목과 어깨 움직임의 강약을 적절히 조절해 회화적 면모를 드러내고 강조한 일이 없었다. 전통적 재현 기법을 습득한 적이 없으니, 그림에서 입체감이나 깊이감을 추구한 적도 없었다. 반면, 송기창이 대작했다는 그림을 보면, 필력이 강조된 경우가 많고, 또 전에 없이 입체감과 깊이감을 강조하는 형상과 구도가 거듭 시도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즉, (관습적인 수준에서) 회화적 회화가 시도된 것. 한데, 회화적 회화는 “작가가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수많은 ‘작업공정’의 순간순간들의 연쇄를 통해 완성”되는 법이라고들 한다. 다시 말해, 콘셉트를 짜낸 작가가 조수에게 회화적 회화의 제작을 맡기면, 어쩔 수 없이 협업이 되고 만다. 미학자 진중권은, 대작이 미술계의 관행이라는 자신의 믿음을 증명하기 위해, 독일의 신표현주의 화가 외르크 임멘도르프의 사례를 제시하기도 했다. 그는, 외르크 임멘도르프의 조수가 원본을 프로젝션으로 트레이싱해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작업 <까페 드 플로르에서의 역사의 레디메이드(Ready-Made de l’Histoire dans Café de Flore)>(1987)가 법정에서 진본으로 인정받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의 교묘한 왜곡에 가깝다. 외르크 임멘도르프의 부인 오다 야우네(Oda Jaune)는 2007년 남편이 사망한 직후, 경매 카탈로그에서 이 미심쩍은 작업을 발견해 위작 혹은 무허가 복제본이라는 문제를 제기했고, 당연하게도 경매에서 빠졌으며, 이어 법에 호소해 작품의 파기를 추진했다. (임멘도르프의 말년작이 진위 논란으로 경매에서 기각된 경우는 더 있다.) 하지만, 직접 스튜디오를 통해 작품을 구매한 소유주도 맞섰고, 법원에서 작품 파기건이 기각된 것. 2014년 판결 당시, 뒤셀도르프고등법원은 작품의 진위 판단과는 무관하다고 적시했다. 문제가 된 작품이 복제된 방식으로 볼 때 정식 작업으로 인정받기 어려운 것은 분명하지만, 말년의 임멘도르프는 신경 퇴행성 질환(루 게릭)으로 인해 그림을 거의 그릴 수 없는 상태였고, 마약중독자였던 작가는 조수들이 대작한 작품에 인증서를 붙여서 스튜디오에서 판매하도록 방조했기 때문에, 회색 영역이 있는 상황. 한데, 위작을 파기하라고 명할 권리가 원작자나 원작가의 대리인에게 있을까? 박물관에 걸려있는 수많은 전칭작들도 결국 위작인데? 내가 볼 때, 이러한 인식 차원의 혼란은, 모두 16세기 이탈리아인들에 의해 창안된 개념인 ‘디세뇨(disegno)’를 잘 이해하지 못한 탓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장인 미술가들은 도제를 여럿 거느리고 다양한 작업을 동시에 진행했기 때문에, 드로잉으로 작업 계획을 시각화하고 그 옆에 작업에 관한 세부 지시사항을 적곤 했다. 그리고, 그러한 구상 단계 혹은 그 구상안을 ‘디세뇨’라고 불렀다. 오늘날 이탈리아에서 디세뇨라고 하면 디자인의 동의어로 통용되지만, 본뜻은 ‘작가의 창조적 아이디어’로서, ‘채색과 선, 명암의 배합, 구도 등을 포괄하는 완성될 작품의 종합적 구상’을 의미한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늘 이야기하는 바, 르네상스 시기의 이론가인 프란체스코 란칠로티는, 자신의 저서 <회화론(Trattato di pittura)>(1509)에서 디제뇨를 회화의 4대 기본 요소(창의[inventione], 디세뇨, 구도[compositione], 채색[colorito])가운데 하나로 꼽았더랬다. 즉, 원근법 이론과 기술이 발달하면서, 유클리드적 시공관이 강화되고, 그러한 관념을 재차 예술 제작 환경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디세뇨라는 상위 개념을 추출해냈던 것이다. 당시의 장인 미술가들은, 디세뇨를 통해 비로소, 예술 창작의 과정에서 창안과 노동을 분리해내고, 제작 노동을 관리 감독할 수 있게 됐으니, 이는 시각 예술 창작 방법상의 일대 변환이 아닐 수 없었다. (작품을 고안하는 차원에서 기본 조형을 제시하고 수정하는 단계로서의 디세뇨라는 개념은, 19세기까지 아시아에 부재했다. 그런데, 디세뇨라는 인식론적 전환이 없으면, 설계도의 발전도 불가능하고, 발명과 원안과 특허권의 발전도 불가능했으니, 그 개념적 부재는 이후 400여 년간 지속되는 심대한 격차를 만들고 만다.) 디세뇨를 통해, 메타 차원에서 조형을 사고할 수 있게 되자, 곧이어 전에 없던 개념인 ‘콘셉툼(conceptum)’이 파생됐다. (1556년의 초출 자료가 전하니, 콘셉툼도 역시 원근법적 세계관을 창작 과정에 적용했던 르네상스 시대의 산물이기는 하되, 디세뇨보다는 다소 뒤늦게 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콘셉툼은, 요즘 흔히 말하는 ‘콘셉트’를 뜻한다. 한국인들은 콘셉트를 ‘기본 아이디어’쯤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한국어 사전에는 “어떤 작품이나 제품, 공연, 행사 따위에서 드러내려고 하는 주된 생각”이라고만 나온다. 하지만, 정확한 뜻은, “구체적 사례들에서 추출해낸 개요적/추상적 아이디어”다. 즉, 작업을 반복하는 과정을 통해 특정 종류의 디세뇨를 유형화하고, 다시 그로부터 개요적/추상적 원형을 추출해낸 것이 콘셉툼/콘셉트다. (그러니, 축척해놓은 구체적 드로잉이나 기본 조형 실험도 없이, 학생들에게 무작정 작업 콘셉트부터 잡아오라고 가르치는 선무당 교수들을 보면, 어이가 없을 따름이다.) 과연, 현대미술에선 콘셉트만 중요하고, 제작 노동은 3자에게 시키면 그만일까? 그렇지 않다. 개념미술가들이 콘셉트에 주안점을 둔 이유는, 과정을 추상적 조형의 대상으로 삼아, 창조성의 신화와 물신적 진본성의 신화를 파괴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개념미술의 창시자 솔 르윗은, 1966년 <연속 프로젝트 I(ABCD)(Serial Project No.1[A, B, C, D])>라는 기념비적 작업을 선뵈며 이렇게 설명했다: “예술가는 미리 결정된 전제에 따라 작업하고, 주관성을 배제한 결과에 도달한다. 우연, 취향, 혹은 무의식적인 기억의 형태들은 작품의 결과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 한다. 연속적인 개념으로 작업하는 예술가는 아름답거나 신비로운 오브제를 만들지 않는다.” 당시 그는, 관념과 과정마저 미니멀하게 정리․반복하고자 애썼는데, 그의 입증을 위해 매번 전제 조건의 비창조적 변주와 결과의 구현/물화에 공을 들였음은 물론이다. 즉, 제작 노동을 조수에게 전가하고 공무원처럼 관리·감독해야, 자신의 실험 가설을 실시-구현-입증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면, 2016년의 우리는, 거꾸로 콘셉트와 아이디어의 신화에 사로잡힌 상태인 것은 아닐까? 현대미술에서 발상과 노동의 분리는, 발상과 노동을 분리된 형태로 통합해내는 과정이나 방식을 새로이 창출-통제해낼 때, 비로소 새로운 존재의 의의를 획득한다. 발상만 중요하다고 믿어도 큰 착오고, 노동만 중요하다고 믿어도 큰 착오가 된다. 현대미술은, 세월이 흐르고 또 흘러도, 인간의 정념을 조형에 깃들게 하는 방법에 대한 조형 차원의 성찰과 실험이기 마련이다. 뇌에 연결된 손이나 몸이 '새로운 노동 환경'(역시 재창안을 요구하는)에서 뇌내 망상 너머로 생각의 가지를 뻗기 시작할 때, 정말로 현대적인 예술이 나온다. 그림이나 오브제를 손수 제작하지 않고, 스냅챗 등으로 행위 지시만 내리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레디메이드 오브제나 프로토콜에 정념을 투사-관철시키는 사례들을 봐도, 핵심은 인간과 인간이 만든 오브제/시공의 관계에 대한 오브제/시공이나 행위 혹은 과정을 성립시키는 게임에 있다. (현대예술로 축적돼온 '인간과 인간이 만든 오브제/시공의 관계에 대한 오브제/시공이나 행위 혹은 과정'들을 타자로 삼는 카운터 프로토콜을 예술로 제시해도 핵심은 역시 게임의 성립에 있다.) 레디메이드 오브제나 레디메이드 프로토콜 그 자체는, 미술관에서 기념비적 작품 역할을 떠맡는 경우에도, 메타-사고를 위해 동원된 '인용구로서의 수단(vehicle as quotation)'에 불과하다. /// 추신) 현행법과 판례들을 보면, 표절과 저작권 침해를 결과물의 특징적 외형과, 특허로 인정되거나 등록 절차 등을 통해 공식화한 구체적 아이디어로만 따지는 경향이 강하다. 한데, 예술가의 표절이나 모방에도 차원이 있다. 결과물을 그대로 표절/모방하는 경우, 제작 과정을 그대로 표절/모방하는 경우, 아이디어의 메타-원형이 되는 콘셉트를 표절/모방하는 경우, (작업 초반에 가설을 세워) 조사 연구 과정을 콘트롤하는 메소드를 표절/모방하는 경우가 각기 다르다. (물리적 유사성을 입증하기 어려운 종류의 표절/모방을, 법 제도에 호소해 규제하고 심판하려는 이들이 종종 나타나지만, 피해자의 억울한 마음을 헤아려 유죄 판결을 내리는 판사는 없고, 또 없어야 하는 게 맞다.) 추신2) 현대미술과 요리를 비교해도 재밌다. 조리법이나 레시피를 고안해내면 특허권을 인정받을 수 있지만, 실제론 모방자들을 막는데 별 도움이 되지 않고, 거꾸로 레시피의 공개로 인해 모방을 부추기는 효과가 크다. 레시피가 동일한 경우에도, 각 요리사들의 결과물엔 개성이 담겨있고, 또 같은 요리사의 동일한 메뉴라고 해도 매번 조금씩 다르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사업가로서 새로운 레시피와 메뉴를 개발해내는 백종원 같은 인물이, 보통의 요리사보다 우월한 존재일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테다. 추신3) [메모] 조영남씨의 무죄 판결 소식에 부쳐 http://chungwoo.egloos.com/4158896 *아트나우 제15호 2016년 가을호 기고문. (2016년 8월 3일 완성 원고.) **지면의 기고문과 다소 차이가 있는 미완성 초고본입니다. 필자의 허락 없이 퍼옮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도01. ![]() <최후의 만찬을 위한 습작(Study for a Last Supper)> 1492년경 종이에 적색 분필과 잉크와 펜선 25.9 x 39.4 cm *<최후의 만찬>(1495-1498)을 제작하기 위한 디세뇨 가운데 하나다. 도02. ![]() <워홀의 꽃(Warhol Flower)> 1964년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과 실크스크린 56×56cm *뒷면에 ‘WARHOL FLOWERS, E. Sturtevant, '64’라고 서명했다. **앤디 워홀에게 실크스크린 원본을 얻어 원본의 작업 과정을 그대로 반복해 제작한 이 작품은, 2005년에 런던 크리스티스 경매에서 122,760달러(약 1억4천274만원)에 낙찰된 바 있다. 흥미롭게도, 스터트번트의 위작은, 워홀의 원본과 쉽게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다르다. 원본과 다를 바 없는 결과물을 만드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과정을 그대로 재연해 의도와 과정에 의해 귀결되는 바를 역추적하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 도03. ![]() 도04. ![]() <연속 프로젝트 No.1(A, B, C, D)(Serial Project No.1[A, B, C, D])>, 1966 알루미늄에 에나멜 50.8×398.9×398.9cm 뉴욕 현대미술관 소장품 © Sol LeWitt *솔 르윗의 목표는 과정을 조형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오랜 창의성의 신화를 해소해버리는 것이었다. 그는 콘셉트나 아이디어가 작업의 핵심이고, 그를 구현하는 노동은 부가적인 것이라고 주장한 바 없다. 그 또한 (도제를 통해) 작업을 물화-구현하는 과정에 공을 들였다. 도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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