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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6월 13일
강의안을 업데이트했습니다. 강의를 들을 의사가 없거나, 여건이 되지 않는 분이라고 해도, 한 번 읽어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강의안은, (내일의 창출을 위한) 비평적 질문의 목록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고맙습니다. 꾸벅.
/////////////////// [현대백화점 문화센터 여름 학기 강의 계획안(갱신 버전)] 임근준의 “이것은 과연 미술인가?(왜 현대미술은 여전히 중요한가?)” 일시: 2017년 6월 13일 - 8월 22일 매주 화 19:20-21:30 장소: 현대백화점 압구정 문화센터(1층 살롱H) 문의: 02-549-4560 신청: 문화센터 홈페이지 임근준의 “이것은 과연 미술인가?(왜 현대미술은 여전히 중요한가?)”는, 변화하는 현대미술의 존재 형식과 양태를 추적하며, 대중이(실은 미술 전공자도) 현대미술에 관해 품는 모종의 의구심을 하나하나 풀어보는 총10회의 연강 프로그램입니다. 포스트-컨템퍼러리의 상황을 전제로, 현대미술의 백 년 묵은 뿌리(즉, 마르셀 뒤샹에 연원하는 레디메이드의 전략)에서 시작해 미술관 등 제도가 오작동하는 오늘(즉, 구식 장소성을 상실한 미술관과 갤러리의 공간을 다루는 법을 찾아야 하는 현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대에 걸친 미해결 주제를 다루며 답을 찾아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마무리된 이후, 현대미술은 '세상을 보는 방법'에 대한 학문처럼 변화-발전해왔습니다. 급변하는 세계의 시각성을 탐구하고, 그에 비평적으로 대응하는 물리적/개념적 시스템을 구현해냄으로써, 인간 사회와 문화의 다층적 핵심을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왔습니다. 따라서, 비평적 관객은 그 시각을 뇌내 시뮬레이션함으로써 세계의 변화상을, 또한 자신의 위치와 정체성을, 새로이 인식해낼 수 있었습니다. 전후 현대미술이 인식론적 시뮬레이션 게임의 장으로 전환되며 다종다양한 성취가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2010년대에 접어 들어 (넓은 의미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이 붕괴하게 된 이후, 현대미술과 그것이 추구하는 현대성을 기동시켜온 대전제, 즉 경험주의적 인식론에 입각한 메타-실험이라는 대전제 자체가 뒤흔들리며, 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종류의 위기가 초래되고 있습니다. 결국, 2020년대를 2년 6개월가량 앞둔 현재, 현대미술은 다각적 갱신을 요구받게 됐습니다. (현대미술인과 현대미술계만 갱신을 요구받는 것은 아닙니다. 관객마저도 갱신되지 않으면 예술의 지속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과연 현대미술은 지속할까요? 왜 현대미술이 지속돼야 할까요? 2017년 오늘, 우리가 현대미술로부터 배울 수 있는 점은 무엇일까요? 당신은 세계상의 업데이트에 무사히 성공하고 있습니까? (평론가로서 저는, 재편하는 비평적 시각성의 추이를 추적하고, 온전히 포착되기 어려운 양태로 변화하는 세계상과, 그에 대응하는 현대미술과 현대디자인의 메타-세계상을 동시에 업데이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연구하며 노력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01. 현대예술의 재료 혼용과 미디어의 재창안 _ 6월 13일 현대미술의 상황은 1990년대 중후반 뉴미디어아트의 바람이 불었을 때 이미 위기였다. 구식 미디어에 의존하는 미술을 시대에 뒤떨어진 수구적 흐름으로 간주하는 현대미술 전문가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뉴미디어아트는 (20)00년대 초중반을 거치며 급속히 유효성을 상실했고, 지금은 현대예술계의 2부 리그로 전락했다. 그렇다면, 미디어를 어떻게 다뤄야 진짜 새로운 미술이 되는 것일까? '일견-새롭지-않아-뵈지만-실은-새로운-미술'을 통해, 우리는 어떤 세계를 목도하게 될까? (부가 질문: '미디어의 재창안'이라는 잣대를 통해, 근년에 화제가 됐던 포스트-인터넷 아트와 그 얼개를 재평가한다면?) 02. ‘굿즈’: 미술이 기념품의 형태로 파생되는 까닭은? _ 6월 20일 현대미술이라고 하면, 많은 이들이 테이트미술관의 터빈홀이나 베르사이유 궁전의 정원처럼 드넓은 공간을 차지하는 초대형 미술품을 떠올린다. 사람 사는 집의 벽에 걸어놓고 감상하는 구식 그림의 감각과는 아무 상관없다는 식으로, 신자유주의적 열망에 맞춰 몸집을 불리고 불려온 소위 ‘세계적 작가’들의 설치 작업을 보면, ‘참으로 다들 낯도 두껍고 욕심도 크구나-’하는 씁쓸한 감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부자가 아니어도 구매할 수 있고, 작은 집에 사는 사람도 소유할 수 있는, 기념품 형태의 미술품도 있다. 이른바 ‘굿즈’가 그것이다. 하면, 기념품의 프로토콜을 의태하는 현대미술품은, 무엇을 기념하는 것일까? (부가 질문: 오늘날, 적잖은 미술가들이 ‘굿즈’처럼 뵈는 미술품을 만들고, 또 그를 유통하는 새로운 질서를 수립함으로써, 신자유주의적 초대형 미술관의 에이전트로 전락하지 않는 방법을 찾으려 애쓰고 있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그런 노력이 왜 중요할까?) 03. 개념적 매시업: 이것저것 뒤섞는 예술적 방법 _ 6월 27일 오늘의 현대미술가들은 예술적 실험을 지속하기 위해 과거엔 시도하지 않았던, 희한한 형식의 뒤섞기를 시도하곤 한다. 예의 대화와 합의와 동조에 의한 협업이 아니라, 각자의 전형적 방법론을 특정한 전제 조건에 따라 무심하게 재조합하거나, 혹은 제 개인 작업에서도 상호 무관한 이질적인 개념과 요소들을 하나의 조형으로 연결해, 새로운 예술적 시공을 콜라주-연출해내기도 한다. 핵심이 되는 키워드는, 대중음악에서 유래하는 ‘매시업’이다. (부가 질문: 왜 서로 연관이 없어 뵈는 컨텐츠와 가치 체계를 매시업해내는 일이 시도되는 것일까? 왜 누군가의 매시업은 실패하고, 또 다른 누군가의 매시업은 창조적 시공을 창출해내게 되는 것일까? 실패와 성공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 04. 위계적 협업: 갑이 을이 되고 을이 갑이 되는 _ 7월 4일 예술가의 협업이라고 하면, 보통은 서로 뜻이 잘 맞아서 매번 의견 합치를 통해 협업하리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공동 명의로 나오는 원고를 보면, 의아해하는 독자도 있다. 아니 글을 어떻게 둘이서 쓰지? 하지만, 대개의 훌륭한 협업은, 의견 일치를 통해 이뤄지지 않는다.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특정한 결정 사항을 서로에게 일임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일이 효율적으로 진행되지도 않는다. 일하는 양도 딱 1/n로 나뉘지 않는다. 개별 협업건에서 누군가는 더 많이 혹은 더 주도적으로 일하게 된다. 그렇다면, 현대미술의 역사에서 협업은 어떻게 실험돼왔을까? (부가 질문: 창조적 협업이라는 낡은 컨벤션을 메타-어뷰징하는 일은 왜 종종 흥미로운 미적 실험이 될까?) 05. 하위문화의 그래피티로 현대미술을 갱신하기: 키스 해링과 바스키아의 경우 _ 7월 11일 1980년대 초중반은 하위문화의 요소로 이른바 고급문화를 공격하고 그를 통해 현대예술을 갱신하는 포스트모던한 실험이 전개됐던 시기다. 그렇다면, 키스 해링과 바스키아는, 각각 어떤 과정을 통해 스타의 반열에 올랐을까? 실제로 이 둘이 추구했던 궁극의 가치는 무엇이었을까? 과연 어떤 과제가 미완으로 남았을까? (부가 질문: 어째서 피카소가 아니라 키스 해링과 바스키아가, 이 시대 현대미술가의 기본형이 됐을까?) 06. 레이어: 층위의 중첩을 통해 새로운 의미의 길을 트다 _ 7월 18일 최근 현대미술계에서 각광받는 화가들을 살펴보면, 화면의 복합적 중첩을 통해 새로운 회화적 실험을 모색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화가 입장에서, 컴퓨팅 환경이나, 스마트 기기의 그래픽 인터페이스가 제공하는 시각적 경험에 부합하기 위한 노력일 수도 있겠지만, 굳이 그러한 경험을 회화로 번안하려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산업화 초기에 자동차를 대리석 조각으로 정교하게 재현하고자 애썼던 조각가/건축가 카미유 르페브르의 <에밀 르바소르 기념비>의 사례처럼, 시대착오적인 노력인 것은 아닐까? 또, 이런 화면 중첩의 문법은, 언제 누가 시작한 것일까? (부가 질문: 투명 혹은 반투명의 형태로 중첩하며 축적되는 세계상은, 장차 어떤 양질전환의 단계에 도달하게 될까?) 07. 회화적 회화: 환영성을 자가 폭로하는 거친 붓질이 뜻하는 바 _ 7월 25일 현대미술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사람이라면, ‘회화적 회화(painterly painting)’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회화적 회화’가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전공자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회화적 회화’의 역사적 계보를 꿰고 있는 사람은 의외로 드물다. (관례적으로 ‘painterly painting’을 ‘회화적 회화’라고 번역하지만, 사실 화가적 회화라고 번역하는 편이 더 정확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회화적 회화’란 대체 무엇일까? (부가 질문: 왜 현대적 인테리어 공간에서, 회화적 회화만이 특별한 위상을 띠게 되는가?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할 수 없는, 시각뇌-손의 비평적 연동 과정을 축적해놓은 오브제로서의 회화적 회화는, 왜 중요한가?) 08. 화이트큐브의 디자인: ‘태도’가 그래픽 디자인의 ‘양태’가 될 때 _ 8월 1일 그래픽 디자이너들의 작업이 화이트큐브라는 미술관의 갤러리에 들어가 전시품으로 제시될 때, 여러 문제가 제기된다. 실재계에서 어떤 기능을 수행하도록 고안된 디자인 결과물은, 갤러리 공간에 전시되기 위해 제작된 미술품과 달라서, 화이트큐브로 자리를 옮겨놓으면 기호적 의미 변환을 거쳐 박제된 뭔가로 전락하는 수가 많다. 즉, 본래의 문화적/상업적/역사적 의미 맥락을 상실한 민속지적/인류학적 자료가 되고 마는 것. 그럼, 디자이너는 화이트큐브에서 어떤 전시를 시도해야 좋을까? (부가 질문: 현대적 그래픽 디자인의 시각성은, 현대미술의 시각성과 어디까지 같고 또 다를까? 현대미술계와 연동하는 체계로서의 실험적 현대디자인은, 어떤 의의를 지니고 있을까? / 화이트큐브에서 그래픽 디자이너가 전개한 실험은, 다시 그래픽 디자인의 실행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왜 스타 디자이너들이 화이트큐브용 아트를 시도하면, 십중팔구 망작이 나오고 말까?) 09. 장소 특정적 미술: 전시되는 장소나 상황에 비평적으로 대응하는 현대미술은 여전히 유효한가? _ 8월 8일 한국에서 장소 특정적 미술이 본격 시도되기 시작한 것은 대체로 1998년부터라고 알려져 있다. 1970-80년대에도 의사-설치 미술이 시도된 바 있지만, 장소 특정성이라는 개념을 주장하는 한국인 작가들이 국내 미술계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끽해야 1995년부터다. 어떤 오브제나 맥락을 미술로서 제시하는 장소 등, 미술가에게 주어지는 장소를 작업의 재료이자 주제의 일부로 삼아 작업한다는 발상과 태도는 언제 어떻게 등장했던 것일까? 그것은 2017년의 오늘의 시점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문제의식일까? (부가 질문: 장소성 탐구의 연장으로서 전개됐던 관계성 추구의 경향도 이제 유효성을 다했다. 하면, 관계성-이후의 장소란 어떻게 재인식될 수 있을까?) 10. 초대형화하는 미술관: 오늘의 미술관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_ 8월 22일 신자유주의 시대를 거치며, 초대형 현대미술관은 예술품이 아니라 미술관 스스로를 위해 존재하기 시작했다. 목적을 망각한 채 스스로 ‘순수예술’로 전화하는 셈. 이러한 문화적 퇴행을 저지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일까? 여론 형성 기능을 상실한 미술계를 넘어, 시민사회 전반의 논의와 개혁 요구가 시급하다. (부가 질문: 스마트-유동성에 잠식된 공간으로서의 유명 미술관은, 어떤 식으로 현대미술에 악영향을 미칠까? 현대미술이 그러한 상황을 다시 힘의 원천으로 활용할 방법은 없을까? [이는, 종종 집에 있어도 집에 가고 싶다고 느끼게 되는, 다소 맥빠지게 우울한 기시감의 불안이 재발하는 상황과도 관련이 있다. 현대미술품을 의인화해, 훌륭한 작품조차 현대미술관이나 현대갤러리를 제집으로 여기지 못한다고 상상해보라. 현대미술의 집은 어디인가?]) ![]() ![]() ![]() ![]() ![]() ![]() ![]() ![]() ![]()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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