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도 소셜미디어에 링크를 올린 적이 있지만, 근년에 등장한 신인 화가 가운데, 런던 태생의 영국인 자데이 파도주티미(Jadé Fadojutimi)는 으뜸이다. 1993년생. (제이드로 읽는 분들이 있는데, 자데이임.)
캔버스 화면 위를 정체성을 탐구하는 장으로 삼는다는 설정은, 줄리 머레투나 마크 브래드포드 식의 전략을 답습하는 것으로 뵈기도 하지만, 회화적 회화의 붓질로 추상적 화면을 구축해내는 재능만으로 보면, 파도주티미가 둘을 능가한다. 거장이 될 면모를 드러내는 신인은, 00년대 초중반에 두각을 나타냈던 데이나 셔츠 이후 처음 본다. (십 년에 한 명 정도 나타나는 희귀한 재능?)
차곡차곡 쌓아 올리기만 한 국내의 엉터리 회화적 추상화들을 보면, 갑갑한 마음에 한숨 먼저 쉬게 된다. 왜 남의 그림을, 그 설정과 과정--임의적 결정들을 동반하는--을 먼저 분석해보지 않는 것일까. 결과만 모방하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추신) 십대 시절에 약간의 이스케이피즘으로 일본 문화에 빠져서 일본어도 익혔는데, 정작 2016년 일본 쿄토의 교환 학생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환상이 다 깨졌고, 정체성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다고. 2017년에 데뷔 개인전을, 2019년에 두 번째 개인전을 치렀다.
두 번째 개인전은 독일 쾰른의 전설적 딜러 기셀라 카피테인(Gisela Capitain)의 갤러리--마틴 키펜베르거 유업의 관리인이자, 펫젤과 함께 좀비 포멀리즘의 주요 작가들과 함께 일해온--에서 열렸으니, 앞으로 어디까지 가나 두고볼 일.
https://www.instagram.com/jadefadojutimi/
https://vimeo.com/251796112
https://elephant.art/jade-fadojutim-heliophobia/
추신) 교토 체류 시기, 즉 그리기 방식을 바꾸던 무렵의 인터뷰는 이쪽: https://yngspc.com/artists/2016/11/jad-fadojutimi/
슬레이드 졸업전 때만 해도, 그냥 평범했다: https://www.ucl.ac.uk/slade/shows/2015/ba_bfa/fadojutimi
보면, 대학원 시절 샤를리네 폰하일 흉내를 많이 냈었다. 수채화는 칸딘스키의 추상수채화를 변주한 모습: https://www.cassart.co.uk/blog/start-oil-painting-with-jade-fadojutimi.htm
추신2) 아이패드로 중간 과정의 캔버스를 촬영해 그 위로 잼세션 하듯이 빠르게 그림을 그려본 다음에, 캔버스로 돌아가 다음 단계를 진행한다. 싸이 트왐블리처럼 빠르게 그렸는데, 윌럼 드쿠닝의 구조적 조형미가 나오는 비결.
추신3) 머리도 좋아서... 영향을 받은 레퍼런스를 언급할 때, 극복할 수 있는 상대를 네임드로핑한다. 인터뷰도 애매하게 잘한다.
비고) 컬러 스와치는 대놓고 토미오고야먀갤러리 소속의 쿠도 마키코(Makiko Kudo)의 풍경화에서 훔쳐오심. 한데, 쿠도 마키코는 무라카미 다카시가 주최한 게이사이 출신으로, 다소간 아야 타카노의 아류였고.
비고2) 저 정도 세팅의 형식주의 변주야 이미 수 많은 좀비-포멀리즘 작가가 했지만. 필력 자체가 다르다. 줄리 머레투나 마크 브래드포드가 좀 억지라면, 자데이 파도주티미는 윌럼 드쿠닝 같달까나. 조앤 미첼에 비해도 타고난 재능은 한 수 위로 뵈니까, 앞으로를 더 기대하게 된다. 그나저나, 화상 핍피 호울즈워스(Pippy Houldsworth)는 해맑아서 이 작가를 못 지키고 메이저갤러리에 곧 빼앗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