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 목적에 맞는 캔버스 제작법을 가르치지 않는 국내외 미술학교들, 진짜 문제가 있다.
잭슨 폴락은 프라이머를 먹인 캔버스와 생지를 왔다 갔다 하다가 생지로 갔고, 두껍고 거칠게 그림을 그리는 윌럼 드쿠닝이야 프라이머를 바른 캔버스를 주로 썼지만, 헬렌 프랑켄탈러는 생지 그대로의 거친 캔버스를 활용했고, 말년의 김환기도 마찬가지였다. 김환기는 눕혀놓고 그릴 때 캔버스의 가로지지대가 그림에 배겨나왔으므로, 나중엔 무게 분산을 위해 가로지지대를 더 추가했다. 자연스러운 발색을 중시했던 마크 로드코는 캔버스천에 아교만 먹이고 백색 프라이머는 입히지 않았다. (대신 아교에 가루 안료를 섞어서 톤을 조절한 경우가 많다.) 애그니스 마틴은 아교 먹인 캔버스에 석회가루 등을 섞은 수성 물감을 발라 지지체를 준비했다. 미묘한 뉘앙스를 풍기는 화면은 그냥 선만 그어선 나오지 않는다.
회화적 회화를 추구하는 경우라면, 굳이 티타늄 화이트가 섞인 젯소를 바른 캔버스를 사용할 이유가 없다. 그건 재현 회화를 위한 지지체다. 재현 회화를 다루는 경우에도 백색 화면에 그리는 경우보다, 추후 완성될 그림에 맞춰 회색조의 프라이머를 입히고 그리는 경우가 많다. 과정이 드러나는 그림을 그려본 사람이라면, 그 장단점을 잘 이해할 것이다.
전업화가라면, 자신에게 특화된 캔버스 타입 몇 가지를 정해놓고 애용하기 마련이다. 남들은 모르는 표징을 숨겨 훗날의 진위 감식을 도모하기도 한다. 특수 제작한 캔버스라면, 위작을 만들기도 쉽지 않고.
하지만, 국내엔 색소가 포함된 방부제를 먹이지 않은 잘 건조된 캔버스 스트레처용 목재마저 존재하지 않는다. 얼핏 원목 같아도 다 화학적 처리가 돼있다. 캔버스 제작 업체들은 아예 그런 고급 목재는 수입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젖으면, 목재에서 방충 성분을 포함한 갈색 색소가 녹아나오며 캔버스(천)을 변색시킨다. 틀어지는 것은 기본이다. 따라서, 매제를 투과시키는 생지의 캔버스나 엷게 아교만 바른 캔버스를 사용하는 화가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목재에 비닐 테이핑을 하는 등의 꼼수를 사용해야 한다.
황당한 점은, 국내 유명 화가들을 위해 캔버스를 제작해온 화방의 경우에도, 목재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장년 혹은 원로 화가의 요구를 들어본 적은 없다고 한다. 성공한 화가 몇몇이 나서서 함께 스트레처용 목재를 수입하고, 건조 창고가 운영될 수 있도록 공생을 도모했다면, 진작에 간단히 해결됐을 문제지만, 거의 아무도 문제라고 여기지 않았던 것.
국립현대미술관의 수복전문가 여러분은, 한국 단색화 대표 작가들의 캔버스 구축 방식에 대한 연구 보고서를 작성해 발표해주기 바란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누가 더 물성을 제대로 탐구한 수행의 화가인지, 명명백백하게 판별할 수 있을 터.
수업 시간에 이우환 전시를 보러오라고 한 뒤, 캔버스가 어떻게 구축돼 있더냐고 질문하면, 회화전공자라고 해도 답을 제대로 하는 이는 지금까지 0명 봤다. (그 정도 관찰력으로 그림을 그리시겠다? 정말?) ///
추신) 지지체의 최적화는 화가만의 문제가 아니다. 조각가에게도, 설치미술가에게도, 뉴미디어 작가에게도, 매체적 지지체와 개념적 지지체의 최적화는 필수다. (지지체로서의 관객을 최적화하는 작업은 드물다.)
추신2) 조소 작업에서 아무 비평적 의식 없이 좌대와 (표리부동한 눈속임 구조를 만드는) 도료 등을 사용하는 것은 더 큰 문제인데, 그게 왜 문제가 되는지 가르치는 경우가 드무니 또한 문제다.
*나중에 시간이 허락하면 지지체에 대한 글을 따로 써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