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년에 삼성본관 옆에 "야생"이란 이름의 식당이 있었다. 7시 출근해 4시에 불 잠시 껐다가 다시 더 일하던, 슬프게 웃기는 시절이었다. "야생"에선 엽사가 잡은 야생 동물로 조리한 음식을 팔았는데, 삼성의 부장님 이사님들 사이에서 참으로 인기가 높아서 날마다 음식점이 미어터지는 상황이었다. 청둥오리 만두에서 멧돼지 뭐시기까지 뭐 별의별 걸 다 만들어 팔았다. 식물성 스테로이드가 풍부할 것으로 추정되는 한약재가 듬뿍 들어가는 건 뭐 기본이었고. 식당 벽엔 얼마 전까지 살아있었을 청둥오리 등 야생 동물 사체가, 메멘토 모리의 장르 페인팅을 비웃듯 주렁주렁 걸려 있었다. 삶의 예술화? 꽥.
힘이 나는 비법 때문일까, 음식값은 만만치 않았다. 한데, 귀한 야생 동물을 함께 먹는 일은, 삼성본관의 아저씨들에게 부와 성공의 상징 이상의 의미를 띠었다. 심상치 않게 낯빛이 검붉은 그 회사-인간들은, 의미가 분명한 표정으로 야릇하게 웃어 뵈면서, "그것들을 먹어줘야 힘이 난다"고 했다. (고혈압으로 고추가 안 서면 술을 끊고 운동을 하셔야죠... 꼭 비뇨기과 가보세요... K저씨 여러분, 부적절한 접대를 받다가 걸린 성병으로 그대의 소중한 전립선이 이미 반쯤 죽어서 그런 걸 수도 있어요!)
힘이 난다? 무슨 힘? 대도시와 대기업에 빼앗긴 걸로 상상되는 그들의 고추 힘. 그래서 야생 동물과 한약재로부터 빼앗아와야 하는 힘. 그리 빼앗은 힘으로 세워야 하는 마음 속 작고 가여운 고추. 소심한 고추를 곧추세우기 위한 무속적 의례로서의 야생 동물 섭취하기. (개소주를 비롯한 각종 즙 애호도 같은 맥락이었다. 그러고보면, 한쪽엔 강신무적 야생 섭취 패턴이 있었고, 다른 한쪽엔 세습무적 야생 섭취 패턴이 있었다.)
식사 시간에 거기 끌려갈 때가 참 고역이었는데... 다행히 누가 신고해서 철퇴를 맞고 한방에 사라졌다. TV 뉴스에도 좀 나왔고.
금권 숭배과 남근 콤플렉스가 부정한 인맥과 뒤엉키던 X같은 시대였다. 전두환 시대에서 김영삼 시대로 이어졌던, 한국의 상경 중상류층 남성 사회 특유의 그런, 기분 나쁘게 끈끈한 공기는, 다행히 외환위기의 충격으로 어느 정도 일소됐더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