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현대미술의 지위가 급락하게 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버블 경제 시절의 그릇된 과시 구매 때문.
1987년 3월 야스다화재안전해상보험(현 손해보험재팬)이 위작으로 의심되는 빈센트 반 고흐의 '해바라기'를 3,990만 달러에 구매한 일도 국제적 비웃음거리였지만, 사업가 사이토 료에이가 1990년 5월 빈센트 반 고흐의 가셰 박사의 초상을 8,250만 달러에,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를 7,810만 달러에 낙찰받은 뒤, 자기가 죽으면 함께 화장해달라고 요구(농담이었다고)한 일은, 일본 미술계의 모두에게 큰 충격을 가했다. (사이토 료에이의 고흐와 르누아르는 지금도 소재는 불명이다. 화장됐다는 풍문과 달리, 국외로 팔려 나갔다고 알려져 있다. 사이토 료에이의 과시적 그림 구매와 화장에 대한 괴담은, 사실 구미인들의 인종 차별에 힘을 입은 것.)
버블 다운 이후, 일본 사회의 일반인들은, 구미의 현대미술을 자신들과는 상관이 없는 영역--섣불리 나섰다가는 망신이나 당하고 민폐나 끼치게 되는 분야--으로 느끼게 됐다고 볼 수도 있다. 1980년대 내내 투기의 대상이었던 히라야마 이쿠오 등 전후 니홍가의 대표 작가들도 마찬가지로 몰락의 길을 걸었다.
무라카미 다카시와 카이카이기키의 해외 진출형 미술은, 그런 악조건 위에서 탄생했다. 무라카미 다카시가 틈만 나면, '일본에서 난 미움을 받는다'라고 말하는 배경엔 사실 여러 맥락과 함의가 얽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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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고: 히라야마 이쿠오는, 묵림회의 주역이었던 민경갑과 함께, 한일 미술 문화 교류의 주역이기도 했다.
https://asia.nikkei.com/Life-Arts/Arts/Forgotten-boom-the-legacy-of-Japan-s-1980s-art-buying-spre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