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년 결산 _ 총평 ] 2021년과 “청년 작가들을 소외시키는” 현대미술계의 새로운 질서2010년대 초중반, 침체 상태에 빠져 있던 한국현대미술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주역은, 일군의 1980년대생 미술인들과 그들의 신생공간과 신생콜렉티브였다. 그들이 일으킨 바람은 2015-2016년에 분수령을 이뤘다. ‘이명박근혜 시대’의 9년 동안 축적된 분노가 세대교체의 에너지원으로 작용했음은 자명했다. 한데, 2005-2008년 시기 한국의 현대미술계는, 노무현 정권기의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증대됐던 유동성으로 인해, 또 유로화 시대의 미술 시장 과열로 인해, 전례 없는 호황을 누렸던 바, 극단적으로 열탕과 냉탕을 오가는 모습에 다름 아니었다. 문제는, 그러한 극단적 패턴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코로나판데믹의 상황에서 유동성 공급과 부동산 시장을 억제하는 정책의 복합 작용으로 인해, 현대미술계엔 돈이 넘치는 모습이다. 시장만 놓고 보면 그렇다. 중국에서 표현의 자유가 급격히 제한되기 시작하면서, 또 홍콩의 민주주주의가 위기를 맞게 되면서, 국외 유수의 갤러리들이 서울에 지점을 열고자 애를 쓰고 있기도 하다. 한국의 소프트 파워가 상승하면서, 또 한국의 경제가 한 단계 더 성장하는 모습을 뵈면서, 거물급 화상들이나 국제적 작가들이나 다들 한국의 서울에 호기심 이상의 매력을 느끼는 모습인 것도 사실이다. 뉴욕타임즈의 홍콩 사무소 일부가 서울로 이전한 일은, 일종의 신호로 작용했다. (미술평론가 앤드류 러세스[Andrew Russeth]는, 서울지국에서 일하게 된 배우자(뉴욕타임즈의 기자 로레타 찰튼[Lauretta Charlton])을 따라 현재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홍보에 가까운 기사들을 연이어 생산하는 모습은 심히 불건전했지만.)
페이스갤러리가 상당한 규모의 새 갤러리스페이스를 마련하고 공격적으로 활동을 개시했고, 타데우스로팍도 새 건물에서 나름 화려하게 출발했으며, 다소 어색한 모습이지만 갤러리쾨닉도 서울 지점을 열었다. 2022년 9월 2일 개막 예정인 국제아트페어 프리즈서울을 노리고, 지점 개설을 추진하는 곳이 여럿이라고 하니, 격세지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잊으면 곤란한 점이 있다. 해외 갤러리의 서울 지점들은 전속 작가들의 작업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일에만 열중할 뿐, 지역의 미술 발전에 기여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외되며 피해를 입는 쪽은 한국의 청년 작가들이다. 국제갤러리, 갤러리현대, 서미앤투스 등이 주도하던 시절엔, 어쨌든 상당 지분이 한국인 미술가들에게 돌아가는 것이 당연했다. 이제 그 구도가 왕창 깨졌으니, 해외 갤러리들에게 지역에 대한 책임을 다하라고 요구하고 비판하는 일이 시급하다.
삼성미술관 리움이 운영을 정상화하고, 약간의 미술공간을 품은 삼탄의 송은문화재단 신사옥이 문을 열고, 서울공예박물관이 개관하고, 이건희전시관 건립 사업이 추진되는 등, 외형적으로 보면 한국현대미술계에 활력이 넘치는 것만 같다. 하지만, 다시 한 번 현대예술의 실험적/비평적 본질은 망각되고 있고, 청년 미술가들은 크고 작은 이벤트를 통해 소모품처럼 활용되고 있다. 2005-2008년 시기의 흥청망청이 어떤 뼈아픈 파국을 야기했었는지 다들 잊고만 것일까? ///
*W매거진 12월호 기고문의 미축약 원고. 귀한 지면을 주신 편집부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