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의 한국현대미술계에선 비이성적인 일들이 마구 전개되는 모습이었다. 가장 대표적인 해프닝은 이건희기증품을 둘러싼 기이한 열풍과 이건희전시관의 유치를 놓고 벌인 지자체들의 낯뜨거운 경쟁이었다. 한데,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 제도마저 그리 운영됐으니,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한데, 올해 최악의 전시 셋을 꼽아보니, 모두 국립현대미술의 전시다. 어디로 봐도 2021년은, 탁월한 신작과 우수한 전시가 이어진 성취의 한 해는 아니었다. 미술계 곳곳에 기이한 활력이 넘쳐났지만, 문제적 작업을 만난 기억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최악의 첫째는, ≪올해의 작가 2020: 김민애, 이슬기, 정윤석, 정희승≫전(20201204-20210404,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2-3-4전시실)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정윤석의 섹스돌 관련 영상 설치 작업 ≪내일≫이 최악이었다. 예술의 이름으로 관객에게 남녀 차별적 유사-포르노를 보게 만들겠다는 구식 전략은, 비평으로 작동하지 않았다. 관객의 분노가 소셜미디어상의 비난 여론으로 이어지며 후보 자격을 박탈하라는 해시태그 시위도 전개됐다. 나는 작품의 철거나 후보 자격 박탈 같은 주장엔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해당 작업이 여성/약자를 부당하게 재현했다는 사실은, 그리고 그런 작품을 국립현대미술관이 지원하고 전시했다는 사실은 영원히 기억돼야 할 것이다.
최악의 둘째는, ≪DNA: 한국미술 어제와 오늘≫전(20210708-1010,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이었다. 스테레오타입으로 기능하는 정태적 전통의 이름으로 통용되는 미감을 DNA로 유비하는 기획이, 21세기의 국립미술관에서 실현된다는 게,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을까? “문화적 DNA”라는 표현이나 그를 통한 사고의 전개는, 굴절된 종족주의, 인종주의에 불과하다는 상식은, 우리 한국의 현대미술관계에선 통용되지 않는 것일까? 신화(myth)로 유전하는 ‘한국의 미’를 역사적 구축물로서 성찰하고 해체함으로써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기획이 돼야 했지만, 윤범모 관장은 그와는 정반대의 길을 택했다.
최악의 셋째는,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한국미술명작≫전(20210721-20220313,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1전시실)이었다. 2021년 4월 29일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황희)는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유족 측이 이 회장 소장품 11,023건 약 2만3천여 점을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기증했다고 밝혔다. 5월 7일 오전 10시 30분, 국립현대미술관은 별도의 기자 회견을 통해 이건희 회장 소장 기증 미술품 1,488점(1,226건, 이하 ‘이건희 컬렉션’)의 세부를 공개했다. 기증품 총목록 정리도 채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가진 대언론 행사였다. 기본적인 진위 감식이나 조사-연구 작업이 온전히 진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시는 급조됐다. 미술관측은 “한국인이 사랑하는 작가 34명의 주요작품 58점”을 골라 전시를 마련했다고 설명했지만, 7월 21일 개막한 전시는 누가 봐도 설익은 모습이었다. 이건희기증품을 핑계로 새로운 미술관을 건립한 뒤, 조직을 차지하고 말겠다는 욕심이, 이런 무리수를 가능케 했다. 국립근대미술관의 설립을 주장하며 여론전을 펼친 사람들에게도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