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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19일
![]() https://edit-dept.com/article/journal/654/ 지면화된 버전은, 순화된 것. 초고는 그와는 다르다. / [ 대구 경북 미술의 어제와 오늘 ] 제1편: TK의 특수성과 현대미술 운동의 뿌리 3부작 칼럼을 통해 나는, 대구 경북 미술 운동의 어제와 오늘을 새로운 각도에서 조망할 생각이다. 서울 태생이지만, 또한 한국현대미술계를 대표하는 평론가 가운데 한 명이지만, 경계성 아스퍼거 증후군이자 커밍아웃한 바이섹슈얼 성소수자로서 늘 주변부화되고 타자화되는 차별에 맞서 싸우며 살아왔다. 그러므로, 그 어디에도 뚜렷이 소속되지 못하는 입장에서, 탈중심주의적 시각으로 대구 경북의 미술을, 물론 지역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전제로, 객관적이면서도 무척 편파적으로 담론해보고자 한다. _ 산업화 시대의 영광 뒤로 가려진 문제들 대구 경북 출신의 현역 현대미술가로는, 박서보(경상북도 예천)와 정상화(경북 영덕) 등 전후 청년 세대에 속하는 단색화가들이 가장 이름이 높다. 단색화가들보다 연배가 아래인, 대략적으로 4.19 세대에 속하는 김구림(경북 상주), 이강소(대구) 등 실험미술가들도 그에 버금간다. 해방공간 세대인 황현욱(경북 안동)은 1974년 대구현대미술제를 창설하고 1988년 인공갤러리를 개관해 한국현대미술의 발전에 기여했고, 제1차 베이비붐 세대에 속하는 김수자(대구)는 한국의 동시대미술을 대표하는 위치에 서 있다. 내로라하는 이들이 넘치니,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르지 못하면, 언급되기도 쉽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이런 화려한 면면은, 산업화 시대와 후기 산업화 시대로의 변환기에 국한하는 성격이 강하다. 지방 경제 위기 시대를 맞은 오늘의 상황에서, 대구 경북 출신으로서 두각을 나타내는 문제적 미술인을 찾기 쉽지 않으니, 위기를 직시하고 대안을 모색해야 할 때가 왔다. 대구 경북 지역에서 새로운 지역주의 미술이 부흥하는 기적적 장면이 보고 싶다면, 일단 냉정하게 현실부터 직시해야 마땅하다. 그리고, 그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역사적 뿌리를 되짚어가며 비평적 상황을 재구성해야 한다. 나는 대구 경북 지역에 아직 그럴 여력, 아니 저력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한국의 정치 판도를 이끌어온 TK의 성격이 오늘날 크게 변화하고 있듯, 한국현대미술계에서 대구 경북이 갖는 위상과 성격도 대대적인 변화와 혁신을 요구받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노골적 담론은 크게 부족하기만 하다. 무엇이 문제일까? _ TK의 산업화 3세대는 새로운 미래를 요구한다 예를 들어, 1985년생 정치인 이준석을 둘러싼 여러 쟁투는, 계파 다툼으로 조명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는 TK 파워의 갱신 과정에서 전개되는 세대 갈등의 성격이 더 강하다. 박정희 정권기의 산업화 역군 세대로 분류되는 1920년대 말생-1930년대 초반생들이 TK 파워의 주역이었다고 한다면, 유수호 판사/의원의 아들 유승민 의원처럼 산업화 설계자 세대의 자녀 세대에 해당하는 이들--제1차 베이비붐 세대이기도 한--은, 외환 위기 이후의 한국을 설계한 신자유주의적 테크노크라트로서 TK 파워를 약화시킨 결정적 약점을 지니고 있다.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계획안을 작성한 유승민은, 박근혜 대통령을 배신한 인물로 기억되고 있지만, 2000년에 단행된 포스코 민영화의 설계자이기도 했다.) 한데, 그 자녀 세대에 해당하는 1980년대생들은, 이제 ‘TK 실세 인맥을 등에 업고 서울에서 권력을 추구하는 구식 패턴’에서는 벗어나야 하는 입장에 서 있다. 구시대의 권력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서서히 침몰하는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1980-90년대생 청년들은 모두 잘 알고 있다. 더 부연 설명해보자. 좋든 싫든, 정치인 이준석은 대구 경북 특유의 산업화 정치학 지형에서 3세대의 새로운 정체성을 대변한다. 그의 부친은 1958년생으로 유승민과 고등학교/대학교 동창이지만, 특권을 추구하는 귀족적 색채는 강하지 않다. 이준석이 ‘(칠곡 왜관 출신의) 할아버지는 대구 세무서 6-7급 공무원으로 일했다’고 밝힌 여성지 기사가 카카오톡 통신으로 돌았을 때, 지역 지지세가 갑자기 확 커졌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한데, 정치인 이준석의 미래가, 수도권과 TK 사이의 새로운 균형을 찾아내느냐 못 찾아내느냐에 달렸듯, 대구 경북 현대미술계의 미래도, 수도권과 TK 사이의 새로운 대척점과 기우뚱한 불균형의 균형을 찾아내는 과제에 달려 있다. 아마 정치 경제 문화 예술 모든 분야가 다 마찬가지일 듯 싶다. 기대 감소 시대를 살게 된 청년들을 기준으로 보자면, TK 명문가 출신의 몇몇 미술인이, 서울에서 성공하고 뉴욕에서 유명해지는 일은, 더는 크게 의미 있는 일이 못된다. 대구 경북의 역사 문화 경제와 맞물리는, 새로운 지역주의 예술 운동을 주도해낼 주역은, 서울의 강남이나 뉴욕의 윌리엄스버그에서 호강하며 사는 특권층 3세가 아니라, 영남권 특유의 산업화 중산층과 그 소중한 토양을 이해하는 보통 사람들 가운데에서 나와야만 한다. 우리가 그 대안적 미래를 그려보고자 한다면, 나는 TK 현대미술의 역사적 뿌리부터 재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역사를 잊은 이들에게, 미래가 없다는 말은, 우리 TK 미술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_ 대구 미술에 양분을 보급한 것은, 좌우 합작과 교류의 뿌리다 당신은 우파 서동진(1900-1970, 대구)의 수채화 운동과 좌파 이여성(1901-?, 칠곡 혹은 대구)과 김용준(1904-1967, 경북 선산)의 민족적 모더니즘 운동의 두 가지 이질적 뿌리와, 그로부터 자양분을 얻은 후속 세대들의 역학을 이해하는가? 후속 세대라고 함은, 이인성(1912-1950, 대구), 이쾌대(1913-1965, 경북 칠곡), 유영국(1916-2002, 경북 울진) 등을 일컫는다. ![]() 1954년 국회의원에 당선돼 정계로 나아간 서동진은, 화가로서 위대한 성취를 거둔 인물은 아니다. 하지만, 수채화 교육과 운동을 통해 대구 경북 지역의 현대미술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수채화 운동은, 모필 문화권인 동아시아에서 서유럽의 현대미술을 받아들이고자 할 때, 낯선 유화보다는 수채화가 더 적합하다는 판단에 의해 전개됐다. 대표는 이시이 하쿠테이(石井柏亭, 1882-1958)로서, 그가 설립한 일본수채화회(日本 水彩畵會)는, 서동진이 주도한 대구 수채화회의 참조점이기도 했다. 서동진의 제자 이인성은, 일본에서 공부하던 1932년, 제19회 일본수채화회전에 참가하기도 하는데, 그를 통해 비로소 세잔, 보나르, 고갱 등의 문제의식을 이해하고 체현하는 단계에 도달한다. (왜 한국의 주요 미술대학 입시에서 오래도록 수채화가 강조돼 왔겠는가.) ![]() ![]() 반면, 여운형계 정치인으로서 비운의 길을 걸었던 이여성은, 산수화가로 활동을 시작해 민족의 역사화가로 거듭나고자 했던 작가이기도 했고, 과학적 유물론자의 관점에서 통사로서의 미술사를 연구해 <조선미술사개요>(1955)를 출간한 미술사학자이기도 했다.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 동생 이쾌대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이쾌대는 윌리엄 블레이크 등의 문제의식을 조선화해, 해방된 민족의 운명을 알레고리로 담아내는 쾌거를 이뤘다. 반면, 김용준은 범진보파이면서도 카프 계열의 교조주의를 배척하는 입장을 취해, 민족색을 전제로 하는 사회주의 모더니즘을 추구하다가 몰락한 인물이다. 김환기와 교유하며 백자대호를 수집하고 예찬함으로써, 소위 달항아리에서 민족적 모더니즘의 원형을 찾도록 유도한 장본인이 바로 그다. 그런데, 서동진과 김용준은 1927년 함께 대구에서 종합예술단체 영과회(0科會)를 만들어, 과거의 구태와 절연하고 0점에서 새출발하는 예술을 추구했으니, 이는 오묘한 좌우 합작의 장면이기도 했다. 1927년의 1회전은 교남기독교청년(YMCA)회관에서, 1928년의 2회전과 1929년의 3회전은 효목동 조양회관에서 열렸다. 1930년 김용준은 좌파 길진섭 등과 함께 백만양화회를 조직해, 동양적 현대미술 운동을 추구했는데, ‘백만’은 백색의 야만인, 즉 야수파 등 모더니스트를 뜻하는 상징적 표현이었다. (김용준은 ‘서구의 추상미술이 동양의 정신으로 회귀하고 있다’고 봤다.) 한데, 미술 교사 사토쿠니오(佐藤九二男, 1897-1945)의 영향을 받은 유영국도, 일본으로 건너간 뒤 SPA연구소에서 길진섭 김환기 김병기 등을 만났고, 도쿄 문화학원(文化學院) 유화과에 입학했으니, 역시 앞선 세대의 수채화 운동과 민족적 모더니즘의 담론으로부터 어떻게든 혜택을 입은 경우다. ![]() ![]() 경북 구미에서 태어난 박정희 대통령도 빼어난 아마추어 화가였다. 1960년대에 그린 내밀한 정조의 그림들이 널리 알려져 있다. 1966년부터 한국일요화가회(1965년 결성)에 김종필 전 공화당 의장이 참여하고, 실력을 닦아 1968년 유화 개인전까지 연 이야기도 유명하다. 두 정치 지도자 모두 성인기에 유화를 그렸다고는 하나, 어릴 적 접한 합리적 도화 교육이 아마추어로서 미술을 향유하는 데 큰 도움이 됐을 것이다. 한데, 박정희 대통령과 김종필 총리는, 우파로 보기에 어려울 정도로 민족주의와 산업 프로파간다 부문에서 우수한 능력을 뵀다.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 사업이나, 민족기록화 사업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본디 이승만 대통령 같은 자유주의 우파는, 프로파간다에 몹시 취약한 법인데. 역시 비결은, 잠시 사회주의에 경도돼 남로당 조직에 속했던 적이 있기 때문이었을 터. TK는 종종 ‘우파의 성역’처럼 인식되지만, 실제론 그 바탕에 좌우 합작과 교류의 뿌리가 뒤엉켜 있다. 그건 미술의 역사에서도 확인되는, 자명한 진실이다. _ 미래 세대에게 투자하는, 자율적 깨우침 운동의 풍토를 되살려야 한국현대미술의 태동 과정에서 대구 경북 지역 출신의 미술인들은 특별한 위치에 있었다. 현대적 미술 교육을 통해 인재를 양성하고 저변 확대를 꾀함으로써, 자신들의 세대에서 거둘 수 없는 성취를, 미래 세대로부터 얻어내고자 했다. (북조선에서 주체미술의 근간을 이룬 이들도, 모두 영남 출신으로, 김용준 외로 경남 거창 태생의 정종여가 ‘몰골진채[沒骨眞彩]’의 화법을 주도했다.) 그 결과가 어땠든, 일본 식민기의 계몽운동가들은, 미래 세대를 위해 열과 성을 다했다. 서동진, 이여성, 김용준 등이 있었기에, 이인성, 이쾌대, 유영국 등이 문제적 창작을 통해 크고작은 미학적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앞날을 이끌 청년들에게 기대를 걸고 열정을 투자하는, 자율적 깨우침 운동의 풍토는, 우리가 반드시 지켜나가야 할 TK의 문화적 유산이다. 당신은 TK의 미래 세대에게 무엇을 내어줄 참인가? 우리 시대에도 뜨거운 심장을 건네줄 사람이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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