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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27일
![]() ![]() ![]() ‘꿈의 우유’ 혹은 ‘청음 나팔’ : 체칠리아 알레마니, 여성주의 밖의 여성주의로 현대미술의 역사를 새로이 써내려가다 “나는 인간(남성)의 중심주의를 극복하는, 그리고 대지가 되고 기계가 되고 자연이 되는 발상을 사랑한다. 전시를 관통하는 반복 주제인 게 맞다(I love the idea of overcoming the centrality of man and then becoming earth, becoming machine, becoming nature. These are certainly the leitmotifs of the show).” - 총감독 체칠리아 알레마니 “나는 59회 국제전의 큐레이터, 체칠리아 알레마니의 입장에 서려고 애썼다(I try to put myself in the shoes of Cecilia Alemani, Curator of the 59th International Art Exhibition).” - 운영단장 로베르토 치쿠토 ![]() _ 체칠리아 알레마니는 왜 남다른 기대를 모았는가? 2020년 1월 체칠리아 알레마니가 2021년 제59회 베네치아비엔날레의 총감독 자리를 차지했다는 소식이 공식 발표됐을 때부터, 적잖은 미술인들이 기대감에 부풀었다. 과연 무슨 주제로 어떤 전시를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 어떤 비전을 제시할 것인가? 2010년 광주비엔날레 ≪만인보≫와 2013년 제55회 베네치아비엔날레 ≪백과사전식 궁전≫에서 하랄트 제만식 비엔날레 연출법에서 벗어나는 법을 제시했던 배우자 마시밀리아노 지오니처럼, 체칠리아 알레마니도 확실한 대안이 되는 방법론을 보여줄 것인가? 그 어느 때보다 기대치가 높은 상황이었다. 2005년도에 스페인인 마리아 데 코랄(María de Corral)과 로자 마르티네스(Rosa Martinez)가 공동으로 비엔날레를 이끈 이래, 2011년 스위스인 비체 쿠리거(Bice Curiger)가 단독 총감독 자리에 올랐고, 2017년 다시 프랑스인 크리스틴 마셀(Christine Macel)이 총감독으로서 권력을 행사했다. 그러므로 알레마니는, 5번째 여성 총감독이었고, 이탈리아 여성으로는 최초였다. ![]() ![]() ![]() ![]() 체칠리아 알레마니는 2005년 건축적 구조의 해체와 재구성을 다룬 기획전 ≪모든 것이 다시 전체적으로 무너진다(Things Fall Apart All Over Again)≫(대안공간 아티스츠스페이스)를 시모네 수발과 공동 기획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2006년에는 휘트니비엔날레 속의 미니 기획전 ≪한패(Down by Law; ‘서로 뒤를 봐주는 사이’라는 뜻)≫를 롱갤러리, 베니 무어와 함께 공동 기획했다. 1930년대 이래의 악당 남녀, 잘못된 행동이나 불법적 행위들, 의심스러운 얼굴이나 썩은 사고방식 등을 총괄한, 법칙과 불족종을 키워드로 한 흥미로운 전시였다. ![]() ![]() 하지만, 본격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2008년 세계 금융 이후부터였다. 2009년 3월부터 2010년 2월까지 옛 ‘디아:첼시(Dia:Chelsea)’의 자리에서 실험적 단명공간으로서 운영됐던 ‘X 이니셔티브(X Initiative)’에서 기획을 총괄하면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 드러나기 시작했다. 2010년도엔 마우리치오 카텔란, 마시밀리아노 지오니, 조시 얼트만과 함께 테이트미술관의 터바인홀에 70개 대안공간을 소환하는 프로젝트를 전개했다. 전시의 제목은 ≪영혼은 팔지 않음(No Soul For Sale)≫이었다. 당시 전시보다도 화제가 됐던 것이 도록을 겸해 발간됐던 롱갤러리의 잡지 ≪찰리≫였다. (이때부터 롱갤러리 3인조의 질서를 알레마니가 잠식하기 시작했다.) ![]() ![]() ![]() ![]() ![]() ![]() ![]() 2010년은 체칠리아 알레마니에게 도전의 시기였다. 커리어로 봐도 변화의 시기였지만, 마시밀리아노 지오니와의 연인 관계를 놓고도 나름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때였다. 2009년 3월 광주비엔날레 총감독으로 선임된 지오니는 관계를 지키기 위해 광주비엔날레의 사전 조사 연구 작업을 연인 알레마니에게 맡겼다. ![]() 알레마니에 의해 2010년 5월 사전 발간된 소스북 ≪나는 거기 없다: 아시아의 새로운 미술(I'm Not There: New Art from Asia)≫—아시아 작가 190명의 작업을 모은 자료집—은 대체 왜 기획됐을까 다소 의아했지만, 아무튼 둘은 2010년의 힘든 과정을 함께 돌파한 이후 결혼했다. 시청에서 간단히 결혼 등록을 한 일에 관해, 알레마니는 “나한테 의료 보험이 없었다”고 말할 정도니까, 최선을 다해 매달린 쪽은 확실히 남자였다. ![]() ![]() ![]() ![]() ![]() 체칠리아 알레마니는 2011년 뉴욕 하이라인아트프로젝트의 디렉터가 됐고, 남편과 함께 뉴욕에 정착하는 모습을 뵀다. 결혼 초반에 독립 큐레이팅 일거리가 줄었고, 커리어에 위기가 오는 것 같기도 했다. 2015년엔 아들을 낳았는데, 당해 지오니는 ≪위대한 어머니≫라는 전시를 만들며 모성 찬양에 나섰다(배우자를 향한 경의를 표하는 기획이었다). 2017년엔 하이라인에 대형 공공미술을 전시하는 커미션 워크 프로젝트를 성사시키며 소소했던 하이라인아트프로젝트에 전환점을 마련했고(이를 통해 하이라인에서 첫선을 뵀던 작업 가운데 하나가 시몬 리의 기념비적 작업 ≪벽돌집≫[2019]이었다), 같은 해 베네치아비엔날레의 이탈리아관 큐레이터가 돼 화려하게 미술계의 중심으로 복귀했다. 하지만, 육아와 활동을 병행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터. 2020년 8월 베네치아비엔날레의 사전 전시로서 ≪불온한 뮤즈들. 베네치아비엔날레가 역사를 만날 때(The Disquieted Muses. When La Biennale di Venezia Meets History)≫를 개막했을 때, 비로소 그는 자유로워진 모습이었다. ![]() ![]() ![]() ![]() ![]() ![]() 문제는 베네치아비엔날레 총감독이 되자마자 코로나판데믹으로 인해 엄청난 위기를 겼었다는 것. 이탈리아에서 엄청난 수의 사망자가 나왔던 2020년을 상기하자면, 2021년의 ≪불온한 뮤즈들≫의 성사나, 2022년 비엔날레의 개막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역사는 알레마니를 위기의 시대에 위대한 성취를 일군 큐레이터이자 리더로 기록할 터. ![]() ![]() ![]() ![]() ![]() ![]() ![]() ![]() ![]() ![]() ![]() ![]() _ 체칠리아 알레마니의 대주제: 여성 초현실주의와 포스트휴머니즘과 그 너머 2021년 6월 체칠리아 알레마니가 총감독으로서 전시 스테이트먼트를 발표했을 때, 사람들은 놀랐다. “꿈의 우유(The Milk of Dreams, Il latte dei sogni)”라는 제목을 앞세우며 그가 강조한 주제는, 크게 세 가지였다: 하나는 (비남성) 육체의 재현과 그의 탈바꿈, 개인과 테크놀로지의 관계, 신체와 대지의 연결성. 사실상, 현대미술이 비남성 주체의 육체를 어떻게 다뤄왔는가를 총괄하며 초현실주의에서 포스트휴먼담론을 거쳐 환경 정의와 지속 가능성 등을 추구하는 오늘에 이르는 현대미술의 역사를 새로이 써내려가겠다는 선언이었다. (지오니의 ≪만인보≫가 현대미술이 인간을 어떻게 다뤄왔는가를 총괄하는 기획이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이는 지오니의 남성적 시각에 대한 반박 같은 것으로 비춰지기도 했다.) ![]() ![]() ![]() ![]() ![]() ![]() 한데, 전시 준비 과정에서 총감독이 멕시코계 영국인 작가 레오노라 캐링턴(Leonora Carrington, 1917-2011)의 단편소설집 ≪꿈의 우유(The Milk of Dreams latte)≫(2017)보다 먼저 읽은 책은, 같은 소설가의 책 ≪청음 나팔(The Hearing Trumpet)≫(1974)이었다고 한다. 후자는, 92세의 할머니가 보청기 역할을 하는 청음 나팔을 선물 받은 뒤, 자신을 양로원에 넣으려고 모의하는 가족들의 대화를 엿듣게 되고, 그에 저항한다는 내용의, 다소 황당한 마술적 리얼리즘 혹은 초현주의풍의 소설. 인생의 마지막 시기를 특징짓는 단절을 상징적으로 잘 다뤘다고 평을 받는 작품이다. 즉, 종합해보면, 알레마니가 만든 비엔날레의 숨은 제목이 ≪청음 나팔≫일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이번 비엔날레가 역사적 단절 속에서 고립된 초현실주의 여성 작가들과 유색인종 여성 작가들을 다시 역사의 중앙 무대로 소환한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면 그렇다. (하지만, 진취적 큐레이터라면, 역사적 재조명과 재평가에 모든 초점이 맞춰지는 것을 피하고, 논점을 다층적 미래에 맞추려 애쓰기 마련이다.) 흥미로운 것은, 한 차례 연기된 비엔날레의 일정에 관해 기자들이 다시 연기될 가능성은 없느냐고 물으면, 대놓고 화를 냈다는 사실. 2021년 6월, 뉴욕타임즈의 리포터 알렉스 마샬과의 통화에선, 책상을 두 번이나 내리치며 “공포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는가? 집중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전시를 만들뿐이다”라고 말했다나. ![]() ![]() 총감독이 2022년 2월, 최종적으로 확정된 참여 작가 목록을 발표했을 때, 사람들은 다시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거의 철저하게 여성과 젠더 비순응 작가 중심이었는데, 대략 여성이 9할이었던 것. (2017년도 비엔날레의 여성 작가의 수가 35%에 불과했던 일과 대비를 이뤘지만, 사실 2019년도 비엔날레에서 여성 작가의 비율은 이미 전체 참가자의 53%를 기록한 바 있었다.) 본전시 초청 작가가 213명인데 남성은 21인이었다. 본전시 참가 경력이 전혀 없는 작가가 180명이었으니, 그 또한 놀라웠다. 게다가 작고 작가의 수가 95인으로, 44%에 해당했다. 20세기 전반의 유럽과 미국의 아방가르드 운동에 연루된 작가들의 수는 23명이었는데, 이는 전시를 관통하는 타임캡슐 형식의 특이한 전시 속 전시 구성 덕이었다. 생존 작가의 초청면으로는 아무래도 유럽 중심적 혹은 뉴욕 중심적 경향을 뵀고, 1980년생-1995년생 구간에 속하는 청년 작가의 수는 58-60인 정도였고, 그 가운데 정금형과 이미래가 있었다. (2019년 비엔날레에 비하면, 청년 참가자의 수는 두 배였다.) 전반적으로 보면, 비디오 작업을 주업으로 삼는 작가나 멀티미디어 설치작업을 전개해온 작가의 수는 소수였다. 대부분 조각 등 입체와 평면 작업을 전개해온 미술가들이었는데, 특징이라면, 공예적 작업 방식, 특히 토착 문화적 재료와 기술을 활용하는 작가들의 면모가 두드러졌다는 것. 일단 공로상에 해당하는 황금사자상은 독일 에센 출신의 카타리나 프리치(Katharina Fritsch, 1956-)와 칠레 산티아고 태생의 세실리아 비쿠냐(Cecilia Vicuña, 1948-)에게 돌아갔는데, 프리치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조각을 대표하는 여성 작가고, 세실리아 비쿠냐는 환경 생태주의 차원에서 미술 운동을 전개해온 오브제-설치 작가다. 현역 작가에게 주는 황금사자상은, 미국관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도자조각가 시몬 리(Simone Leigh, 1967-)와, 아프리카-캐러비언계 영국인 화가 소냐 보이스(Sonia Boyce, 1962-)가 이끈 영국관의 협업체에게 돌아갔다. 영국의 흑인 여성 가수 5명을 영상과 조각, 자료를 통해 재조명하는 방식을 취해 “소리(sonic)를 통해 역사를 재해석했다”는 평을 받은 영국관에서는, 어느 정도 양혜규의 소리-조각-공간 같은 면모가 뵈기도 했다. 청년 유망주상에 해당하는 은사자상은, 레바논의 남성 퀴어 조각가인 알리 셰리(Ali Cherri, 1976-)에게 돌아갔다. ![]() ![]() ![]() ![]() ![]() ![]() ![]() ![]() ![]() ![]() ![]() ![]() 이러한 강경한 탈-남성-중심주의적 경향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체칠리아 알레마니의 강력한 의지 표명 외로, ‘흑인의 목숨은 소중하다’ 운동과, 구겐하임미술관의 인종주의를 고발한 셰이드리아 라부비에의 낸시 스펙터 퇴진 운동, 그리고 마약성 진통제 사업으로 부정한 돈을 벌어온 새클러 가문의 이름을 미술관계에서 퇴출시키는 운동(낸 골딘 등이 주도해온) 등의 종합적 흐름이 모종의 ‘정의 구현’을 가능케 했을 것이다. 코로나 판데믹의 상황 속에서 이러한 긍정적 변화들에 가속이 붙었다. (미국의 경우 주요 미술관의 리더십 직위에서 백인들이 밀려나고 유색인종 큐레이터들과 이사진이 두각을 나타내게 됐다.) ![]() ![]() _ 본전시(국제전)의 형식; 한 줄기 흐름을 상호 연결되는 다섯 개의 특별-주제전이 관통하는 하면, 실제 전시의 모습은 어땠을까? 본전시와 조화 혹은 부조화를 이루는 주요 국가관들의 풍경은 어땠을까? 일단 본전시의 구성을 살펴보자. 지아르디니의 중앙전시관에서 시작하는 전시의 첫 번째 작업은, 공식적으로는 카타리나 프리치의 구작 ≪엘레판트/엘리펀트≫였다. 베네치아비엔날레와 오랜 인연을 자랑하는 공로상 작가를 예우하는 동시에, 무리의 리더 역할을 언제나 경험 많은 암코끼리가 맡는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즉 여성의 리더십을 상징하는 포석-코끼리 조각상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관객이 처음 보게 되는 작업은, 전시관 파사드를 차지한 코지마 본 보닌(Cosima von Bonin, 1962-)의 유리강화플라스틱 조각 ≪만약 그들이 짖는다면 01-07(WHAT IF THEY BARK 01-07)≫ 등이었다. ![]() ![]() ![]() ![]() ![]() ![]() ![]() 이후 로즈마리 트로켈(Rosemarie Trockel, 1952-)로 이어지는 중앙전시관 전시는, 뮈게 일마즈(Müge Yilmaz, 1985-)로 마무리 되고, 다시 아세날레에서는 시몬 리에서 시작해 마리안느 비탈레(Marianne Vitale)로 끝을 맺는다. 각 작가들은 모종의 키워드로 연결되는 모습인데, 외형적으로 공통분모가 명확히 드러나는 경우도 많았다. 예를 들어, 118번째 작가 티샨 슈(Tishan Hsu, 1951-)의 사이버펑크적 작업 다음엔 정금형의 ≪토이 프로토타입≫(2021)이 붙는 식이었다. 하지만, 역시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전시에 삽입된 타임캡슐들이었다. 노란색으로 통일된 첫 번째 섹션의 제목은 ≪마녀의 요람(The Witch's Cradle - La Culla della Strega)≫으로, 초현실주의 여성 작가들을 중심으로 현대적 여성의 자아 계발과 탐구를 재조명했다. 사실상 신여성(Neue Frau) 특별전이기도 했다. ![]() ![]() ![]() ![]() 은은한 중명도의 청회색으로 통일된 두 번째 섹션의 제목은 ≪궤도를 따르는 몸통(Corps Orbite - Corpo Orbita)≫으로, 1978년의 특별전 ≪언어의 물질화(Materializzazione del linguaggio)≫에 화답하는 기획이었다. 미렐라 벤티볼리오가 여성 작가들로만 꾸렸던 ≪언어의 물질화≫전을 놓고 당시 한 남성 평론가는 “핑크 게토”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는데, 알레마니는 ‘언어 생산의 양태를 확장하는 시도를 통해 해방과 차이의 실천을 구현해냈던 19세기와 20세기의 작가들’을 한 자리에 소환함으로써, 벤티볼리오에게 경의를 표했다. 신지학 화가 조지아나 하우턴은 바로 이 섹션에 포함됐다. (조지아나 하우턴은 힐마 아프 클린트나 엠마 쿤츠에 앞서는 신지학 운동의 주요 리더였다. [비고: 하랄트 제만이나 마시밀리아노 지오니는 유달리 엠마 쿤츠를 강조했던 바 있었다.]) ![]() ![]() ![]() ![]() ![]() ![]() 어두운 회색으로 연출된 세 번째 섹션의 제목은 ≪마법의 기술(Technologies of Enchantment)≫로, 1962년에 브루노 무나리가 올리베티사와 협업해 만들었던 기획전 ≪프로그램된 미술, 키네틱 미술, 멀티플 작업들, 열린 작업(Arte programmata. Arte cinetica. Opere moltiplicate. Opera aperta)≫에 응답하는 형식이었다. 컴퓨테이셔널 프로세스의 확산 과정에 기여했던 여성들의 역할에 주목하는 방식을 통해, 미국의 빛과 공간 운동에 상응하는 것처럼 해석된, 이탈리아 여성 작가 6인(Marina Apollonio, Dadamaino, Lucia Di Luciano, Laura Grisi, Grazia Varisco, Nanda Vigo)의 광학적 옵아트를 한데 모았다. ![]() ![]() ![]() ![]() ![]() ![]() 아세날레 쪽에 속한, 아주 밝은 황토색으로 꾸며진 네 번째 섹션의 제목은 ≪잎, 조롱박, 조개껍데기, 그물, 가방, 끈, 자루, 병, 솥, 상자, 용기(A leaf a Gourd a Shell... - Una foglia una zucca un guscio)≫로, 어슐러 르귄의 에세이 “소설의 캐리어 가방 이론(The Carrier Bag Theory of Fiction; 혹자는 허구-운반가방론으로 옮겼다)”을 출발점으로 삼았다. 르귄은, 장검 같은 남근 형태를 상징으로 강조해온 남자들의 주장과 달리, 인류 문화에서 첫 상징은 채집한 곡식 등을 모으는 그릇 모양의 도구였을 것이라고 지적했던 인류학자 엘리자베스 피셔에 주목했다. 인간의 삶과 함께 해온 보통의 도구들로부터 테크놀로지와 서사의 작성 등을 재사고하기를 제안하는 르귄을 따라, 이 전시는 루스 아사와(Ruth Asawa: 블랙마운틴 출신의 유기적 직조-조각의 거장), 소피 토이버-아르프(Sophie Taeuber-Arp), 토시코 타카에즈(Toshiko Takaezu: 현대적 달항아리와 추상회화적 분청 작업으로 일가를 이뤘던 명인) 등을 비기념비적인 방식으로 기념비화했다(맥락으로 보면, 밖에 전시된 시몬 리도 여기에 속했다). ![]() ![]() ![]() ![]() 회색 벽면과 청색 바닥으로 처리된 다섯 번째 마지막 섹션의 제목은 ≪사이보그의 유혹(Seduction of the Cyborg - La seduzione del cyborg)≫으로, 도나 해러웨이의 ≪사이보그 선언(A Cyborg Manifesto)≫(1985)에 부응하는 기획이었다. 오슈카 슐렘머와는 다른 방향을 취했던 라비니아 슐츠와 발터 홀트(Lavinia Schulz and Walter Holdt)의 사례를 강조하면서, 마리안네 브란트(Marianne Brandt), 한나 회흐(Hannah Höch), 엘사 폰 프라이탁 로링호븐(Elsa von Freytag-Loringhoven), 카를라 그로슈(Karla Grosch), 마리 바실리에프(Marie Vassilieff), 루이즈 네벨슨(Louise Nevelson), 레베카 호른(Rebecca Horn) 등을 병치했다. ![]() ![]() ![]() ![]() 이러한 다섯 섹션—마녀, 몸통, 마법, 그릇, 사이보그—의 타임캡슐은 모두, 게이 디자이너 듀오 ‘포르마판타스마(Formafantasma)’가 디자인했다. 전시 인터페이스를 통해 해석의 메시지를 발생시키는 포르마판타스마의 방식은, 이미 ≪불온한 뮤즈들≫에서도 효과가 입증됐던 바 있는데, 한국으로 치면, 전시 인터페이스 디자인을 작업으로 삼는 김동희의 경우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반면, 도록과 전시 가이드북 등의 디자인은, ≪예술과 퀴어 문화(Art & Queer Culture)≫를 디자인했던 여성 그래픽 디자이너 듀오 ‘일상을 위한 실천(A Practice for Everyday Life)’이 맡았다.) ![]() ![]()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역사적 캡슐 전시가 다시 전체 전시와 연결이 됐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사이보그의 유혹≫의 주제는, 전자 기판과 전선으로 직조한 추상 조형을 제시하는 에디오피아 아디스아바바의 작가 엘리아스 시메(Elias Sime, 1968-)나, 괴자연의 생명체를 창조하는 스페인 마드리드의 조각가 테레사 솔라르(Teresa Solar, 1985-), 마술적 자연의 공간-조각을 조형하는 영국 런던의 젠더 비순응 작가 프리셔스 오코요몬(Precious Okoyomon, 1993-) 그리고 이미래와 정금형 등으로 확장되며, 특정한 맥락 혹은 차원에서의 독해를 유도했다. ![]() ![]() ![]() ![]() ![]() ![]() ![]() ![]() 더 흥미로운 점은, 총감독의 심어놓은 반복 주제(leitmotifs) 덕분에, 국가관들마저도 그에 맞춰서 독해하게 됐다는 사실이다. 대표적인 것인 시몬 리의 미국관이었다. _ 제59회 베네치아비엔날레를 지배하는 상징이 된 시몬 리 시몬 리는 제임스 파머(James A. Palmer)의 인종차별적 풍속 사진들 속에 담긴 얼굴 모양의 물단지와, 그에 영향을 준 오스카 와일드를 평가절하하는 풍자화—게이였던 오스카 와일드를 폄하하고자 흑인으로 묘사했다—들을 숙고하며, 인종주의, 여성차별주의, 호모포비아와 제노포비아를 극복하는 새로운 도자 조각들을 제작하고, 그를 중심으로 건축적 맥락을 재조형하는 단계에 도달했다. 줄루족의 의례용 국자를 모티프로 한 조각상이나, 리베리아 단족의 의례용 숟가락 와케미아 등을 레퍼런스로 삼은 조각상들은, 재설정된 미국관의 시공 속에서 브랑쿠시나 자코메티를 뛰어넘는 존재감을 과시했다. ![]() ![]() ![]() ![]() ![]() ![]() ![]() ![]() ![]() ![]() ![]() 그의 특별함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신주류 미술가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토크니스트로 전락하지 않고자, 흑인 여성 관객과 흑인 여성 예술가들과의 관계에 중점을 두고 싸움을 전개하고 있다. LA의 초대형갤러리 하우저앤워스와는 그 과정에서 결별했고, 얼마 전 함께 일하는 갤러리를 매튜막스로 교체했다. 2. 아프리카 전통과 흑인 노예 착취와 차별의 역사를 고루 고찰하고, 그 과정에서 흑인 여성의 주체에 주목하는 작업을 전개하고 있다. (시몬 리는, 그들이 무슨 일을 당했느냐에 주목하지 않는다. 그들이 뭘 했느냐에 초점을 맞춘다.) 3. 도자 조각으로 새로운 비기념비적 기념비성을 창출한다. 큐레이터와 평론가들이 시류에 편승하라며 다매체 설치 작업을 권하던 시절에도, 그는 끝까지 본인 고집대로 흙에 매달려왔다. (비고: 한국에선 여전히 개념미술인 척 허세를 떠는 엉터리 다매체 설치가 대세다.) 반면, 특별상(special mention)을 탄 프랑스관과 우간다관은 각각 새로운 차원의 탈식민주의 비평을 전개했다. ≪꿈에는 제목이 없다(Les rêves n’ont pas de titre / Dreams have no titles)≫를 제목으로 내건 프랑스관에서, 이민자 가정 출신의 작가 지네브 세디라(Zineb Sedira)는 바를 배경으로 한 퍼포먼스 피스로 이목을 끌며, 독립 이후의 알제리에서 제작된 영화의 장면과 내러티브를 재해석했다. ≪발광: 그들은 시간 속에서 꿈꾼다(RADIANCE: They dream In Time)≫를 제목으로 내건 우간다관은, 작가 아카예 케루넨(Acaye Kerunen)과 콜린 세카주고(Collin Sekajugo)의 소박한 지역주의 미술을 과장 없이 보여주며, 탈식민 주체의 유동성과 역동성을 잘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 ![]() ![]() ![]() ![]() ![]() ![]() ![]() ![]() ![]() _ 확장된 여성성을 탐구하는, 여성 및 젠더 비순응 작가의 시대: 누구누구를 주목해야 하나? 베니스비엔날에서 알레마니가 본전시에 초청한 35세 이하의 여성 및 젠더 비순응 청년 작가의 면면은 다음과 같았다. 1995년생 심니키웨 불룽구(Simnikiwe Buhlungu)가 최연소였고, 1993년생은, 암브라 카스탸녜티(Ambra Castagnetti), 자데이 파도주티미(Jadé Fadojutimi), 쿳자나이-바이올렛 흐와미(Kudzanai-Violet Hwami), 브론윈 캐츠(Bronwyn Katz), 타우 루이스(Tau Lewis), 젠더 비순응 작가인 프리셔스 오코요몬(Precious Okoyomon) 등 6명이었다. ![]() ![]() ![]() ![]() 1991년생은 한나 레비(Hannah Levy) 1명이었고, 1990년생은 젠더 비순응 작가인 제스 판(Jes Fan), 슈앙 리(Shuang Li) 2명이었다. 1989년생은 키아라 엔초(Chiara Enzo), 산드라 무징가(Sandra Mujinga), 엘리 페레즈(Elle Pérez) 3명, 1988년생은 줄리아 첸치(Giulia Cenci), 이미래, 제냐 마크네바(Zhenya Machneva), 라파엘라 보겔(Raphaela Vogel) 4인, 1987년생은 펠리페 바에자(Felipe Baeza), 자미엔 줄리아노-빌라니(Jamian Juliano-Villani), 캐롤린 라자드(Carolyn Lazard), 타오 응우엔 판(Thao Nguyen Phan) P. 스태프(P. Staff) 5인이었다. 이 가운데, 특별히 큰 주목을 받고 있는 문제적 작가만 선별하자면, 프리셔스 오코요몬, 제스 판, 엘 페레즈, 자데이 파도주티미를 들 수 있다. (이들이 더 훌륭한 작가라는 말이 아니다. 이들이 현재의 예술정치학적 지형에서 지표가 된다는 뜻이다.) 영국 런던 태생의 나이지리아계 미국인인 프리셔스 오코요몬은, 육체의 연장으로서의 환경을 마술적 리얼리티로 재포착해 구현하는 복합 미디어 예술가다. 미래주의적 자연관뿐만 아니라, 삶을 영위하는 방식이나, 자신을 제시하는 방식 면에서도, 기성 작가들과는 크게 다르다. 장르나 미디엄을 가리지 않다시피 하는, 한 마디로 뉴타입. (유감스럽게도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스튜어트 코머 등 구체제 남성 큐레이터들의 리그가 그를 적극적으로 홍보-활용하고 있다.) 캐나다에서 태어나 홍콩에서 성장한 뒤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는 홍콩계 캐나다인 제스 판은, 테스토스테론이나 모친의 오줌 등을 미디엄 삼아 자신의 트랜지션 과정과 복합 미디어 실험을 혼성 실험하며 유동적 정체성을 탐구하는 미술가다. 역시 정체성 정치학에서 탈궤하면서도, 몸의 정치학을 재규정하며 가시적/물리적 유동-정체성을 추구하고 실험하는, 뉴타입이다. ![]() ![]() ![]() 미국 브롱스 태생의 푸에르토리코계 미국인인 엘 페레즈는, 젠더 플루이드 시대의 성소수자 청소년/청년 공동체를 탐구해온 사진가다. 특유의 차분한 시선을 통해 새로운 현실을 고찰-재현해냄으로써, 구식 LGBT 정치학과 퀴어 미학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다. 위악적 캠프 같은 요소마저 내밀한 순간을 통해 자연스럽게 포착해내는 모습은, 볼프강 틸먼스로부터 받은 영향을 강하게 드러내지만, 일단 속한 세대가 다르니 결과물도 상이할 수밖에. ![]() ![]() ![]() ![]() ![]() 반면, 영국 런던 태생의 아프리카계 영국인 자데이 파도주티미는, 일본 망가-아니메에 빠져 살았던 경험으로 바탕으로 모에-추상화(캐릭터의 성격을 띠는 유기적 전면 추상화)를 창조해온, 매우 독특한 경우다. 일본 체류를 통해 환상을 벗어던지게 됐다면서도, 종종 코스프레를 즐기는, 역시 뉴타입이다. 그의 붓질에선 (9번가 여성 추상표현주의자들의 계보에 비견할만한) 거장의 면모가 뵌다. ![]() ![]() _ 총결 혹은 요약 체칠리아 알레마니는, ‘여성과 성소수자 중심주의로, 초현실주의와 포스트휴머니즘을 하나로 관통-재조합하겠다는 야심찬 미술사적 시도가 실제로 설득력을 갖겠느냐’는 의구심을, 고밀도의 전시로 불식시켰다. 마시밀리아노 지오니가 광주비엔날레 ≪만인보≫에서 하랄트 제만과 마이크 켈리를 의식하며 새로운 전시 방법론을 제시할 때, 본전시 속에 비공식 특별전 ≪언캐니의 방≫을 삽입했다면, 알레마니는 공식적으로 다섯 섹션의 타임캡슐을 통해 자신만의 반복 주제를 특징으로 하는 바그너-심포니적 전시 방법론을 관철해냈다. ![]() ![]() 어쩌면, 그에게 유일한 경쟁자는 남편 마시밀리아노 지오니였던 것 같다. 그리고, 이제 그를 극복하는 단계에 서 있다. 인제 체칠리아 알레마니에겐 주요 미술관의 관장이 되는 일만 남았다. 어떤 기관이 그를 모셔갈 것인가, 그게 문제다. /// 추신) 이번 베네치아비엔날레에서 탈식민 내러티브의 탐구 차원으로 강조된 것은 오직 아프리카였다. 아시아의 다종다양한 탈식민 내러티브는 언제 누가 대주제로 다룰 것인가? 추신2) 주요 참가 작가들을 어느 상업 갤러리가 후원하고 있느냐 또한 초미의 관심사였다. 개고시언이나 페이스갤러리 대신 정치적 올바름의 차원에서 선두에 선 곳은, 데이비드즈워너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데이비드즈워너 소속 작가는 무려 다섯 명이 전시에 초대됐다: 루스 아사와, 노아 데이비스, 바바라 크루거, 안드라 우르수타(Andra Ursuta), 포샤 즈바바헤라(Portia Zvavahera). 하우저앤워스 소속은 셋이었다: 크리스티나 퀄스(Christina Quarles), 테츠미 쿠도(Tetsumi Kudo), 소피 토이버-아르프. 강소 화랑인 JTT갤러리 소속도 셋이었다: 세이블 일리즈 스미스(Sable Elyse Smith), 재미언 줄리아노-빌라니(Jamian Juliano-Villani), 일레인 캐머런-위어(Elaine Cameron-Weir). 한편, 세실리아 비쿠냐는 레만모핀 소속. ![]() ![]() ![]() ![]() 추신3)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런던 태생의 아프리카계 영국인 신예 자데이 파도주티미는, 일본 망가-아니메에 빠져 살았던 경험으로 바탕으로 모에-추상화(캐릭터의 성격을 띠는 유기적 전면 추상화)를 창조해온, 매우 독특한 경우다. 캔버스 화면 위를 정체성을 탐구하는 장으로 삼는다는 설정은, 줄리 머레투나 마크 브래드포드 식의 전략을 답습하는 것으로 뵈기도 하지만, 회화적 회화의 붓질로 추상적 화면을 구축해내는 재능만으로 보면, 파도주티미가 둘을 능가한다. 거장이 될 면모를 드러내는 신인은, 00년대 초중반에 두각을 나타냈던 데이나 셔츠 이후 처음 봤다. (십 년에 한 명 정도 나타나는 희귀한 재능?) 십대 시절에 약간의 이스케이피즘으로 일본 문화에 빠져서 코스프레 차림으로 행사에도 참가하고 일본어도 익혔는데, 정작 2016년 일본 쿄토의 교환 학생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환상이 다 깨졌고, 정체성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다고 한다. 그 뒤 작업 세계가 크게 성장했다. 2017년 눈 밝은 핍피 호울즈워스(Pippy Houldsworth)에게 발탁돼 데뷔 개인전을 치렀다. 두 번째 개인전은 독일 쾰른의 전설적 딜러 기셀라 카피테인(Gisela Capitain)의 갤러리—마틴 키펜베르거 유업의 관리인이자, 펫젤과 함께 좀비 포멀리즘의 주요 작가들과 함께 일해온—에서 열었고, 이후 승승장구하고 있다. 대학원 시절엔 샤를리네 폰 하일 흉내를 많이 냈고, 수채화는 칸딘스키의 추상수채화를 변주하며 스터디 과정을 거쳤다. 컬러 스와치는 대놓고 토미오고야먀갤러리 소속의 쿠도 마키코(Makiko Kudo: 무라카미 다카시가 주최한 게이사이 출신으로, 다소간 아야 타카노의 아류에 속하다)의 풍경화에서 훔쳐오기도 했다. 아이패드로 중간 과정의 캔버스를 촬영해 그 위로 잼세션 하듯이 빠르게 그림을 그려본 다음에, 캔버스로 돌아가 다음 단계를 진행한다. 싸이 트왐블리처럼 빠르게 그렸는데, 윌럼 드쿠닝의 구조적 조형미가 나오는 비결이 거기에 있다. ![]() ![]() ![]() ![]() ![]() ![]() ![]() ![]() ![]() 추신4) 체칠리아 알레마니는 극단적으로 여성과 젠더 비순응 작가 중심의 전시를 만들어놓고도, 이번 비엔날레를 “페미니스트 전시”라고 부르는 일에는 주저하게 된다고 밝혔다. 페미니스트라는 호칭이, 여러 문화적 맥락과 상황에 따라 상이한 대상을 의미할 수 있다나? 전시에 페미니스트로 자신을 규정하는 이들이 다수 포함됐지만, 알레마니는 기존의 페미니스트 미술사의 얼개—린다 노클린 등으로부터 연원하는—에서 자유로운 판단유예의 공간을 추구하는 길을 택했다. 물론, 총감독은 원론적으로 자신의 전시가 “페미니스트 쇼(feminist show)"가 맞다고 했다. 하지만, 과거의 모든 비엔날레들이 ”머스큘리니스트(masculinist)“ 버전이었는지를 먼저 물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추신5) 판데믹 위기의 2020년대와 새로운 하위-주체 투쟁 전선의 형성: 국제적 동성혼 법제화의 흐름으로 대표됐던 2010년대 중후반은, 현대예술계에서 레즈비언과 게이들이 광범위한 승리를 거두는 시기이기도 했다. 당연히 그 다음은, 트랜스젠더 등 젠더 비순응 작가들이 주목을 받을 차례였다. 고로, 2017년 뉴욕 뉴뮤지엄에서 열렸던 ≪도화선: 도구이자 무기로서의 젠더(Trigger: Gender as a Tool and a Weapon)≫전은 시의적절한 논의 장으로 기능했다. 과거의 페미니스트미술운동이 백인 고학력 중상류층 여성들의 입장을 대변했다면, 이제 새로운 젠더 정치학과 그에 부합하는 미술운동은 유색인종 다계층 여성과 트랜스젠더와 젠더 비순응 다중 정체성의 주체들에게 발언의 기회로 작용하고 있었다. ![]() 2010년대 후반 이후 기성세대의 성소수자 문화는 보수화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모습을 뵀지만, 청소년과 청년들은 대단히 빠른 속도로 젠더플루이드 문화를 받아들였다. 성소수자 문화와 이성애자 문화 사이의 위계가 흐려지면서, 젠더의 유동성을 이해하고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고 다양성을 포용하는 세대가 나타났다. 일부 대도시의 중상류층 학교에서만큼은 바야흐로 젠더 비순응 정체성이 결코 소수라고 말할 수 없는, 일종의 대세가 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는 단지 구미 도시에서만의 현상은 아니다. 중국의 대도시에서도 젠더 비순응 주체로 정체화하는 청소년의 비율은 드라마틱하게 늘고 있다.) ![]() 하지만, 2020년부터 코로나 판데믹이 세계를 강타하면서, LGBTQ+ 공동체의 제도적 움직임은 둔화됐다. 상업화한 각종 프라이드 행사와 퍼레이드가 취소됐고, 그 사이에 사각 지대에서 많은 변화들이 전개됐지만, 그 흐름을 총괄하고 가시화할 기회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2022년 제59회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페미니스트 여성 미술가들과 젠더 비순응 미술가들로 구성된 새로운 연합 전선이 제시됐던 것. 1968년의 스톤월 혁명 이래, 흑인민권운동과 흑인/유대계의 인종 정치학을 모방하던 LGBTQ 정치학과 미학의 시대는, 일단 현대문화예술운동의 지형에선 거의 완전히 막을 내리게 됐다. 지금은 새로운 페미니즘과 결합하는 젠더 플루이드 정치 운동의 시대다. 이러한 유동적 정체성의 모델과 그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시각문화운동의 흐름은, 기존의 인종 정치학이나 후기-민족주의, 그리고 탈식민주의 비평의 흐름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일단 2022년 4월, 세계 최대의 잡지출판회사인 콘데 나스트(Condé Nast)가, 오늘의 새로운 LGBTQ+ 공동체의 시각으로 대중문화와 정치와 뉴스를 다루는 온라인 잡지 ≪뎀(them)≫을 인수해 후원하기 시작했다. 2017년 시작한 이 잡지는 젠더 이분법을 거부하는 새로운 아웃사이더들을 대변한다. 그/그녀의 세계관에서 벗어난 사람들의 세상이 펼쳐지고 있는 터. 아직 한국에선 이러한 유동적 젠더 정체성의 흐름과 그에 부합하는 문화예술운동을 보기 어렵다. 이는 무얼 의미할까? 한국 사회에선 여전히 정치적 종족성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뜻이 되는가? 유동적 정체성의 추구도, 현대적 개인주의를 전제로 한다는 점만은 분명해 뵌다. ![]() ![]() ![]() *아트인컬처 2022년 6월호 특집 기고문: http://monthlyart.com/portfolio-item/2019_4_vol411/ 귀한 지면을 주신 편집부에 감사드립니다. / **지면화된 원고와 다른, 미축약 미교열 버전입니다. 퍼옮기지 마시길 부탁합니다. (링크와 RT는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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