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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0월 05일
기호의 세계에서 기호사들은 용이 되길 꿈꾼다. 그러나 무기력한 인간일뿐인 그들은 용이 되기 위해 먼저 이무기가 되어야 한다. 이름난 기호사들은 자신들이 용이라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들은 대개 용이 아니라, 이무기이거나, 혹은 용의 탈을 쓴 인간에 불과하다. 만나보기 전에 용과 이무기를 구별하는 방법은, 현재까지 알려진바로는, 없다. 용이나 이무기로 추정되는 이들을 인적 없는 외통수에서 마주쳤을 때, 당신은 비로소 그들의 실체를 파악하게 된다. 당신이 마주친 인간 이상의 존재가, 당신을 항해 "으아-"하고 입을 벌려 포효했을 때, 여의주가 떨어지며 당신을 보다 높은 정신의 세계로 인도한다면, 그건 용이다. 진짜로 그런 존재가 있다는 소문은 널리 퍼져있으나 사실 딱히 증명된 바는 없다. 반면에, "으아-" 소리와 함께 맹독이 뿜어져 나와 당신의 정신을 해하고, 마음을 사납게 하면, 그건 이무기다. 물론 정신차리고 겨우 도망친다고 해도, 이미 당신의 등에는 칼이 꼽혀있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무기들이 가장 해로운 것은 아니다. 정작 가장 해로운 것은 용의 탈을 쓴 인간들이다. 그들은 찬찬히 살펴보기만 하면 판별이 가능하지만, 악질적인 경우 구별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들은 "으아-"소리를 내며 입을 벌리는 순간 탈을 벗어던지고 튀어나와 정면에서 칼을 휘두르는 만행을 저지른다. 저급 기호사들인 그들은 현실을 굳게 믿으며, 용과 이무기는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고 우겨댄다. 기호의 세계에서 그들처럼 위험한 존재도 드물다. 그들은 현실을 무기로 기호의 세계 그 자체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추신) 이무기들마저 현실을 신봉하는 저질 기호사들에 밀려 멸종해가는 마당에 용을 마주하는 행운을 차지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나는 기호사 경력 10여년이지만, 아직도 용을 목격한 적이 없다. 허나... 만약 용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사실 존재해본적도 없다면? 그렇다면 내가 만났던 이무기들은 다 무엇이었을까. 허나, 나는 아직도 승천하지 않는 용의 전설을 믿는다. 승천하지 않고 인간계에 남기를 선택해, 종종 기호사들 앞에 출몰한다는 용의 이야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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